☆ ‘인더스토리’(INDUSTORY)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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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박사는 인더스토리 시즌3 바다 3편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다양한 전쟁이 무역로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또한 막대한 군수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전쟁의 특성상 전쟁은 해상 무역 기술 발전을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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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해상 무역을 이끈 상품 ‘석유’
20세기 해상 무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물자는 석유였다. 등불을 밝히는데 사용하던 석유가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1873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지역에서 대량의 석유가 묻힌 유전이 발견된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형인 루드비그 노벨과 로베르트 노벨은 당시 바쿠 지역을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의 허락을 받아 바쿠 유전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세계 석유 생산을 지배하던 ‘스탠더드 오일’의 창업자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노벨 형제가 세운 브라노벨을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다. 바쿠 지역에서 생산된 대량의 원유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노벨 형제는 1877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터 호’를 만들어 바쿠의 원유를 유럽 각지로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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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항로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비롯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아덴만, 이란에서 아라비아 해로 빠져나오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믈라카 해협 등이 대표적이다. 브라노벨은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사라졌지만 BP와 로열 더치 셸은 지금도 ‘글로벌 석유항로’를 이용해 석유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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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차 세계대전 판도를 바꾼 ‘해상봉쇄’
석유가 주요 전략물자로 떠오르면서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서구 열강들의 다툼은 더욱 치열해졌다. 후발주자인 독일 제국은 베를린과 비잔티움(현재 이스탄불), 바그다드를 잇는 3B 정책을 추진하고 중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해당 지역에서 석유를 생산하던 영국 등 강대국이 이를 용인할 리 없었다. 결국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1차 세계대전은 지금까지 치러진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각 전선엔 긴 참호가 파였고 이곳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국가 생산 역량을 모두 쏟아 부어도 모자랄 정도로 막대한 군수 물자가 소진됐다. 일찌감치 미국은 먼로주의(외교상의 불간섭주의)를 내세우며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군수 물자가 부족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이른바 ‘삼국협상’ 진영에 대량의 무기를 수출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적국으로 흘러드는 미국의 물자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독일은 새롭게 개발한 잠수함 ‘U보트’를 이용해 군함과 상선을 모조리 격침시키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시행한다. 이 작전이 효과를 거두면서 영국은 궁지로 몰렸지만 미국 상선 루시타니아 호가 U보트에 격침되면서 미국 내 반독일 여론이 급격히 끓어오른다. 결국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에 맞서자고 제안하는 ‘치머만 전보’가 발각되면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미국을 적으로 돌린 독일은 결국 1918년 11월 항복 문서에 사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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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이 두려워한 것은 일본이 독일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 전장에 뛰어드는 상황이었다. 미국·영국·중국·네덜란드는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대일 무역망을 봉쇄하는 ABCD 포위망을 구축했다. 미국이 주도한 무역 봉쇄는 대미 석유 의존도가 80%에 달하던 일본에는 치명적이었고,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이미 동남아시아를 침략할 남방군을 창설해 전쟁을 준비했다. 1941년 12월 미군이 주둔했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1944년 미국의 대반격으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최후의 총력전을 강행한다. 이미 전투기에 주유할 석유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은 전투기에 폭약을 싣고 배에 충돌하는 자폭 공격 ‘가미카제’ 전술을 사용한다. 결국 일본은 이 전투에서 항공모함 4척, 함재기 300기 등 전력을 모두 소진했고,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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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촉발한 물류 혁신 ‘컨테이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막대한 군수 물자가 세계 전역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물류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부터는 탱크, 자동차가 전쟁에 본격 도입되면서 기존의 나무 상자로는 부속품 등을 운반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개발된 것이 철판으로 만든 상자, 코넥스 박스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코넥스 박스를 이용해 대량의 물자를 실어 날랐다.
임 박사는 “한국인들에게는 비극적인 전쟁이었지만 한국전쟁은 물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서 “한국전쟁에 코넥스 박스가 쓰이며 물류 혁신의 토대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1956년 코넥스 박스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의 운송사업자 말콤 맥린이 컨테이너를 발명하면서 세계 물류사는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컨테이너는 코넥스 박스처럼 철판으로 만든 상자에 불과했지만 20ft(6.1m)와 40ft(12.2m)로 규격이 통일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컨테이너 등장 이전까지는 제품들이 제각각 다른 크기의 상자에 담겨 적재량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하역 작업에도 크레인 외에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등 비효율성도 컸다. 하역 과정에서 분실과 파손에 따른 물자 손실도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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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사를 바꾼 혁신적인 발명품”이라고 칭송했다. 임 박사는 “컨테이너가 촉발한 물류 혁신은 엄청난 것”이라면서 “결국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류 시스템은 전쟁을 수행하던 미군의 물류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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