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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랑질’로 넘쳐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랑질 중 하나가 농사짓기다. 농사가 생업인 농부가 SNS에 자신이 키운 농작물을 자랑삼아 올리는 일은 없다. 커가는 농작물 사진을 자랑스레 찍어 올리는 이들은 대부분 ‘도시농부’들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놓은 잘 익은 방울토마토 사진이나 무성하게 자란 상추, 깻잎 등을 보면 ‘나도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디서 씨앗을 구하고, 어떻게 키워야할 할지 몰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급’ 도시농부들의 농사이야기를 옥상, 베란다, 텃밭으로 나눠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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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광역시 중구에 거주하는 지모(46)씨는 온라인에서 유명한 도시농부다. 자신의 2층 단독주택 옥상에 23.1㎡(7평) 규모 텃밭을 조성해 다양한 작물을 기른다. 11년째다. 지씨는 ‘화전’(火田)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잡풀과 덤불을 밭 가장자리에 모은 뒤 날을 잡아 불을 피운다. 날씨가 추워지면 벌레들이 모아둔 덤불 더미 속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도시농부의 최대 적인 해충 박멸에 그만이다.
지씨는 “캐나다에서는 도시농업 수입으로 살아가는 도시농부가 토치로 밭을 태운다는 글을 읽고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단, 덤불을 태울 때는 바람이 없고 맑은 날이어야 한다. 자칫 불씨가 날아가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씨는 “한시도 불에서 눈을 떼서는 안된다. 불씨를 확실히 제거하고 다 꺼졌다 싶어도 20분 이상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함께 지씨가 중시하는 게 물이다. 지씨는 수돗물 대신 빗물을 모아서 작물에 준다. 그는 “도시농업은 농사를 짓는 면적이 좁다 보니 돌려서 짓는 회전농업을 해야 하는데 수돗물은 물속의 염소가 지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다”며 “빗물을 모아주기 어렵다면 수돗물을 받아 하루 정도 통에 보관한 뒤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지씨는 옥상에 빗물받이 천막을 설치해 놓고 항상 빗물을 모은다.
지 씨는 “토질이 좋지 않으면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며 “좋은 비료를 한 포 정도 사서 넉넉히 뿌려주면 작물을 키우는데 문제가 없다”고 조언했다.
지 씨는 “옥상에 텃밭을 일군 뒤로 느리게 사는 맛을 알게 됐다. 가끔 지인을 불러 직접 키운 작물을 나눠 먹으며 작은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며 웃음 지었다.
네이버 파워블로거인 ‘흙쉐프’ 박모(31)씨가 베란다 농사를 시작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박씨는 아내와 아이 둘과 함께 서울 도봉구 A아파트에서 산다. 결혼 전에는 집 주변 야산이나 공터에서 농사를 지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 밭을 베란다로 옮겼다.
박 씨는 “농사 준비와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싼 편이고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베란다 농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박씨는 방울토마토 등 열매작물을 주로 키운다.
박 씨는 “베란다 농사 때는 흙을 담는 용기로 스티로폼 상자를 많이 이용하는 데 상자 뚜껑을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뚜껑이 화분 받침으로 쓰기 좋고 농사를 쉴 때는 다시 뚜껑을 덮어서 상자를 보관하기에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보통 베란다 작물 키우기에 도전하는 초보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상추를 심는 것이라고 했다. 상추가 생각보다 키우기 어렵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는 “웃자람 때문에 상추 농사에 실패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웃자람이란 생육조건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작물이 덩쿨 모양으로 우후죽순 자라는 현상이다.
박 씨는 집에서 쓰다가 이가 나간 가위를 버리지 말고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웃자란 덩쿨이나 얼기설기 얽힌 뿌리를 정리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베란다 농사를 짓다가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벌레다. 박씨는 “뒷산 흙이나 텃밭 흙에는 벌레 알들이 깔려 있어 벌레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업체에서 판매하는 배양토를 쓰면 벌레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베란다 농사 때는 주의해서 비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유기질 비료는 발효한 비료여서 작물에는 좋지만 집안에서 쓰기에는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베란다 농사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만 집안에서 냄새가 나고 의외로 농사에 성공할 확률이 낮다”며 “가능하면 텃밭 농사에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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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인 서초구 서초동에 거주는 전주형(34)씨는 2년차 도시농부다. 서초구에서 분양한 텃밭에 농사를 짓는다. IT업종에 종사하는 전씨가 농사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아이 때문이다.
전 씨는 “아이들이 흙을 만져볼 기회가 잘 없는데 도시 텃밭을 하면서 아이들이 흙을 만져보고 맑은 공기도 마시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서초구에서는 텃밭을 신청하면 상추와 감자 모종 등을 나눠주고 여름 이후에는 가을 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비료도 한 포대 지급한다”고 전했다. 서초구의 텃밭 분양면적은 1구좌당 14㎡다. 분양가격은 7만∼10만원 사이다. 개인은 세대당 1구좌, 기관(단체)의 경우 5구좌까지 가능하다.
전 씨는 “상추나 깻잎 등 쌈 채소는 주변에 나눠줄 게 아니라면 조금만 심는 게 좋다”며 “방울토마토 같은 열매작물은 꼭 심어보길 권한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물을 주고 김매기도 해줬는데 아이들이 한두 번은 재미있어 하다가 금방 시들해졌다”며 “나중에는 혼자서 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고 웃었다.
전 씨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수확할 때 충분한 보상이 돌아온다”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 삶의 여유를 찾은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