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은 출소 당일인 14일 새벽 SK 서린사옥을 찾았다. 가족과 임원들을 만나 2년 7개월의 공백 기간 중 제자리를 지켜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광복절인 15일과 그 다음 날(16일)에도 출근해 그룹 사정을 듣고 국가 경제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할 지 논의했다. 경제 활성화에 마음이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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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종건·최종현 회장에 이어 1998년 회장에 취임한 뒤 SK를 수출 600억 달러, 고용 8만 명(2013년 4월 기준)을 책임지는 재계 3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에너지·통신· 반도체에서 대한민국 산업의 새로운 성장사를 썼다.
하지만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분식회계 사건이 취임 전부터의 관행이었다 해도, 측근에게 사기를 당했다 해도 말이다. 원심에서 항소심으로 가면서 범행동기가 형에서 동생 투자금으로 바뀌고 핵심 증인인 김원홍 전 SK고문이 채택되지 않는 등 재판 과정에서 허점도 상당했지만.
억울한 옥살이 여부와 별개로 최 회장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사랑받는 SK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그의 다짐이 국민의 마음을 적시려면 각고의 노력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이 강하고, 사면복권이 이뤄진 경제인이 크게 줄어든 탓에 재계에서도 대놓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버지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이재현 CJ 회장이나 아들 둘을 감옥에 보내고 가슴 아파하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눈물이 있다.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도 감옥에 있다. 3년 만에 참석하는 26일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추모식 행사(경기도 화성)를 앞두고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둡다는 점도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누르고 있다. 위안화 가치 절하는 중국과 경쟁구도에 있는 우리 수출 경쟁력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청년고용 확대를 골자로 하는 노동시장 개혁을 제시했지만 사회적 갈등은 여전하다. 젊은이들이 맘 놓고 창업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창조경제로의 대전환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최 회장은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공장(M14 반도체 생산공장 준공식), 울산 SK에너지 컴플렉스 등을 조만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SK하이닉스는 5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 방침을 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그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던 다른 재벌 총수들의 첫 경영 행보와 달리 신경썼으면 하는 일이 있다. 당장 그룹 차원의 투자와 고용 확대에 노력해 주는 것외에도 경제계 리더로서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다.
비로소 구심점을 찾은 SK그룹이 10년, 20년 이후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줄,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미래 사업에 투자하길 바란다. 그가 누차 강조해 온 지속가능한 사회 문제해결의 해법으로 제시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도 견고하게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두 손에 성경책을 쥐고 교도소 문을 나섰다.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신앙심이 더 깊어지게 된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더 큰 세상을 봤다면 그 지혜를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로 되돌려 줬으면 한다. 옥중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책을 쓰면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며, 작은 실천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