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칼럼]향판(鄕判) vs 향총(鄕總)
하루 노역 대가를 5억 원으로 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사건은 ‘향판(鄕判)’이라고 함축되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부각시켰다. 향판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지역법관제는 노무현 정권 시절인 지난 2004년 제도화됐다.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다 보니까 잦은 인사이동으로 재판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역법관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대구는 절반 가까이, 제일 비중이 적은 광주도 26%의 법관이 지역법관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대법원은 허 전 회장 사건을 계기로 향판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향판제도가 ‘이너서클’을 만든 뒤 그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옹졸한 프레임’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조 삼륜’이 칡넝쿨처럼 서로 얽혀 있는 탓에 공정한 잣대가 애당초 설자리가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 입장에선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밖의 눈을 의식하는 염치도 잃게된다.
서울대가 2011년 법인화 이후 처음 총장 선거를 치르고 있는데 이번 향판 사건이 오버랩된다. 두 가지 점에서다. 첫째는 폐쇄회로에 갇혀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직선제 대신 간선제로 치르는 게 이번 선거의 특징인데 인기투표로 변질되고 있다는 소리가 서울대 안팎에서 들려와서다. 후보자들은 지금 서울대가 처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멋드러진 비전을 제시했지만, 기실 정년연장 같은 휘발성 공약으로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초 출마자 12명 전원이 서울대 출신인 데다 5명의 예비후보자 5명 모두가 현직 서울대 교수다.
둘째는 외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법인화됐지만,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을 계속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법인화 이후 자율성이라는 당근만 챙겨받고 세계 최고의 상아탑으로 거듭나라는 우리 사회의 기대는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KAIST와 포스텍은 좋은 총장을 뽑기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외국인도 총장으로 데려오기도 한다. 117년 역사의 일본 교토대가 외국인 총장 영입에 나선 까닭도 눈여겨봐야한다.
서울대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KAIST, 포스텍은 물론 고려대, 성균관대에도 순위가 밀려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명문인 건 수재들이 거쳐 가기 때문이지, 연구 인프라나 교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는 시중의 수근 거림이 있다는 걸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 총장이 ‘향총(鄕總)’이라는 비아냥을 듣는다면 그건 우리나라 국격(國格)에도 좋지 않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학부는 물론이고 석사과정을 서울대에서 수료하지 않으면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기 힘들다는 얘기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자유로운 상상과 연구 대신 도제(徒弟)의 연 쌓기를 버거워한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서울대가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벗어버리려면 굳게 닫힌 빗장을 열어제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혈주의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세계 톱10’이란 비전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문을 걸어잠그면 잠글수록 향판의 몰락을 자초한 그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새 총장은 개방과 소통을 대학 행정에 어떻게 접목할지를 취임사에 담았으면 좋겠다. 명문(名門) 대학은 나라의 자산이자 자랑거리다.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

!["고맙다"...'제자와 부적절 관계' 들통난 교사가 남편에 한 말 [그해 오늘]](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5/12/PS25121500001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