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지난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북부에서 고속도로 다리가 붕괴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는 없었지만 차량 수 십대가 물에 빠지는 등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번 사고만 해도 그렇지만 이후 이 곳 현지언론들에 의해 공개된 미국 전국에 있는 다리의 안전상태 진단결과는 더욱 아찔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미국 연방도로청(FHWA)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는것으로 평가된 다리가 6만6749개였고 이보다 한 단계 더 불안한 상태인 ‘기능적으로 노후화된’ 다리도 무려 8만4748개에 이르렀다. 이를 합치면 15만개가 넘어 전국에 있는 60만7000개 다리들 중 24.8%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내에 세워져 있는 다리 네 곳 중 하나는 언제 무너질 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사고가 일어난 시애틀 북부의 이 다리 역시 노후화로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골절 위태 상태’였다고 한다.
부실공사는 아니었지만 이미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은 뒤에도 제대로 된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 우리나라의 성수대교 붕괴처럼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人災)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 연방정부나 각 지방정부들도 이런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미국 교통국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전국 다리 보수공사에 투입된 자금만 285억달러(32조원)였다고 한다. 이는 지난 1998년의 123억달러에 비해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며칠전인 지난 18일 볼티모어를 방문해 “노후한 도로와 다리, 항만시설 등을 보수하기 위해 500억달러에 이르는 정부재정을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보수 덕에 그나마 위험한 다리의 비율은 지난 2002년 29.5%에서 꾸준히 낮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이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예산에 비해 다리 노후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문제가 있는 다리들에 투입해야할 보수 비용만 76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지난 2007년에도 미시시피강 다리 붕괴사고로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은 후 다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한 세수 부족과 계속된 정부 재정적자 축소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보수공사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만해도 뉴욕 맨해튼으로 넘어가는 링컨터널이 지은 지 100년이나 돼 홍수만 나면 폐쇄되기 일쑤다. 수많은 나무 전신주들은 약간의 비나 눈에도 정전사태를 빚는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은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일찌감치 인프라를 구축해 노후화 역시 가장 먼저 겪는 일종의 ‘선진국 병(病)’을 앓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인프라도 이제 서서히 미국과 같은 고령화 과정을 겪어야할 것이다. 지난 197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진 우리나라 인프라들은 고도성장의 체증을 단기간 내 받아왔고 일부는 공기 단축 등을 위해 부실함을 감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는 국민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인프라 관리는 수요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이 미국보다 정부재정 여건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눈 앞에 닥친 노후화에 허둥지둥하는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우리나라 정부도 미리미리 인프라 관리와 보수에 만전을 기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