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바뀐 게 없었다

논설 위원I 2012.06.05 07:00:58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05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IT(정보통신), 건설 등의 부문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4일자 1면)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중 32개 계열사들의 지난해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75%(24개사)가 전년에 비해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이 증가했다. 대상 기업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인 핵심 계열사들이다.

지난해 재벌가 빵집 논란을 전후해 주요 그룹들이 제과·커피 사업에서 손을 떼고, MRO(소모성 자재구매 대행) 회사를 분리하는 등 겉으로 시늉을 냈지만 정작 안으로는 잘못된 관행이 유지·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룹 후계자들이 소유·지배하는 계열사일수록 일감 몰아주기가 심했다. 그룹 차원에서 차기 오너를 키워주고, 부(富)를 대물림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는 증거다.

겉으로 빵집 처분, 여전히 계열사 거래
삼성의 경우 IT 계열사인 삼성SNS의 계열사 매출 비중이 51.5%로 전년보다 높아졌다. 이 회사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45.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물류·건설·IT·광고 등을 맡고 있는 5개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모두 증가했다. 이들 5개사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다. SK와 동부, 한진 등 다른 대기업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감 몰아주기 폐해는 부의 편법 승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량있는 중소기업이라도 대기업 일감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원천 차단돼 이른바 ‘삼성·LG 동물원’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계열사 지원으로 땅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한 오너가 그룹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기업 뿐만 아니라 종업원과 투자자에게도 득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광고·물류 등 4개 분야에서 10대 재벌의 내부거래는 17조원이 넘고, 이 중 88%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진다.


재벌, 자발적으로 공정거래에 앞장서야
최근 경제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재벌들을 지나치게 압박해 성장과 투자 의지를 꺾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를 뺀 나머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잘못된 관행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를 바로 잡고, 경쟁입찰을 확대하기 위해 만든 모범기준이 내달 1일 시행된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규정과 제도, 재벌들이 스스로 한 약속만 잘 지켜도 일감 몰아주기는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팔을 비튼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재벌들 스스로가 약속을 지키고,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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