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5th 이슈]증권사 M&A, 이번 맞선에선 커플 탄생할까

박수익 기자I 2011.11.04 10:25:00
마켓in | 이 기사는 11월 03일 13시 31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2007년 한국에도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자본시장법은 결과적으로 한 커플(M&A)도 만들어내지 못하며 실패했다. 당사자들이 싫다고 했고, 대외적인 환경도 도와주지 않았다. 지난해 한화증권이 푸르덴셜증권을 인수하며 모처럼 증권가에 인수합병(M&A) 사례가 등장했지만, 이는 정부가 주선한 `맞선`의 결실이 아닌 `연애 결혼`이었다.

커플 메이킹에 실패하며 ‘매파’(媒婆)로서의 자존심을 구긴 정부는 최근 글로벌IB들의 주된 수익원인 프라임브로커 업무가 가능한 한국형 IB의 조건으로 자기자본 3조원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역량있게 하려면 자기자본 규모가 커야한다. 리딩(대형) 증권사간 합병이 바람직하다. 국내외 경쟁의 제도적인 틀을 만들었으니 대형 증권사들의 M&A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7월 25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이번에는 정부가 주선한 맞선자리에서 커플이 탄생할까.

▲ 일러스트: 김성규 기자

"아무리 맞선을 주선해도 당사자들이 싫다고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금융당국 관계자)

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앞세워 대형사간 M&A를 유도하겠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대형사들의 1차 선택은 유상증자였다. 대우증권(006800)(이하 증자 금액 1조1200억원)을 필두로 우리투자증권(005940)(6000억원), 삼성증권(016360)(4000억원), 현대증권(003450)(5950억원), 한국투자증권(7300억원) 등 자기자본 순위 상위 1~5위 회사가 경쟁적으로 자기자본 3조원 기준 충족을 위한 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형증권사들이 증자를 선택한 것을 두고 M&A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한된 시간내 현실적으로 매물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차선책을 택한 것이고, 무엇보다 덩치 확장 경쟁을 선점하면서 향후 나타날 수 있는 합종연횡에서 피인수주체가 아닌 인수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우증권이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의 증자 총액(1조원)을 뛰어넘는 1조1200억원의 증자를 계획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증자에 따른 주가하락 여파로 최종적인 증자 금액 축소는 불가피하겠지만, 최대주주인 산은금융지주(36.4%)가 있기 때문에 대규모 실권에 대한 염려도 없다. 결국 대우증권은 3조원 기준 충족을 훨씬 넘어서 단숨에 자본력 1위 증권사로 등극하면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우투증권 노렸던 하나금융
 
5개 증권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현실적으로 3조원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유상증자가 쉽지 않다. 자기자본 6위인 신한투자(2조700억원)는 최소 1조원 증자를 해야하고, 미래에셋증권(037620)(1조9000억원), 대신증권(003540)(1조6000억원), 하나대투(1조5000억원), 동양종금증권(003470)(1조2000억원)은 1조원으로도 부족하다.

이 가운데 신한투자와 하나대투는 모두 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어 모회사의 부담이 크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가 최대숙원인 하나금융지주가 하나대투에 1조원을 쏟아부을 여력이 없다. 상장사인 미래에셋과 대신, 동양종금도 기존 주주들의 반발과 대주주의 자금력을 감안할 때 조 단위 증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증권가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빅5`와 경쟁하느냐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가운데에서 의미있는 행보가 있었다. 하나금융지주가 우리투자증권을 염두에 두고 우리금융지주(053000) 인수전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인수전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우리금융지주 입찰후보였던 보고펀드에 투자자로 출자할 계획이었다.

우리금융 인수전에서 MBK파트너스, 티스톤과 함께 경쟁했던 보고펀드는 당시 한국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지방은행 등을 투자자로 끌어들여 입찰에 참여하는 그림을 그렸다. 인수에 성공한다면 향후 우리금융의 자회사 중 은행부문은 한국투자지주, 증권부문은 하나금융지주, 지방은행 부문은 지방은행에 분할 매각하는 시나리오였다. 결과적으로 입찰 직전 한국금융지주 등의 출자 철회로 입찰 참여 자체가 무산됐지만, 적어도 하나금융의 이같은 행보는 의미가 남다르다.

외환은행 인수 작업으로 당장 증권 강화에 필요한 자금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소비용을 투입한 이후 외환은행 인수가 연착륙하면, 증권 강화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증이냐 인수냐
 
`최소비용 투입 원칙`은 다른 증권사에게도 남일은 아니다. 과거 제한적인 매물이 나왔을 때에는 증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적이 있었다. 2008년 있었던 국민은행의 한누리증권(현 KB투자증권) 인수, 현대차(005380)의 신흥증권(현 HMC투자증권) 인수 당시에는 고가 인수 논란이 제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당국이 신설증권사를 대거 허용하면서 당시에 비해 증권사 프리미엄이 낮아졌고, 증권업종 시황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주주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형 증권사를 인수할 경우 증자 못지 않은 자기자본 확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SK그룹의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SK증권(001510)이 대표적이다. 시가 900억원 규모의 최대주주 지분(SK네트웍스(001740) 22.4%)을 2배 프리미엄(1800억원)을 주고 인수할 경우 4600억원대의 SK증권 자기자본을 흡수할 수 있다. 물론 구조조정과 합병 비용 등을 고려하면 복잡한 계산이 뒤따르지만, 당장 유상증자가 녹록치 않은 증권사들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증자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M&A인 셈이다.

2007년 말 국민은행의 한누리증권 인수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당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추가적인 증권사 인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수장(首長)도 바뀌고 조직도 변화했지만 국내 최대은행의 증권사에 대한 구애는 변함이 없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여러차례 증권사 인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현재는 여력이 없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한누리증권 시절과 별반 다를게 없는 6개에 불과한 지점망을 고려하면 추가 인수 가능성은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중도 포기하긴 했지만 푸르덴셜증권 인수전에 참여하며 증권업 확장의욕을 공식화했다. HMC투자, 하이투자, NH투자 등도 모기업의 지원을 업고 언제든 인수주체로 나설 수 있는 증권사로 분류된다.

자기자본 규모 4위인 현대증권은 인수주체보다는 피인수에 가깝다. 현대증권 매각이익은 곧 현대그룹의 복잡한 순환구조와 경영권 방어 문제를 단번에 풀 수 있는 `실탄`이 될수도 있지만 문제는 대주주 의지다.

그동안 끊임없는 매각설에 시달렸던 중소형사들도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화된 움직임은 없다. 모기업의 재무상황 탓에 매각설의 단골손님인 유진투자증권(001200)은 2008년말 한차례 공식 매물로 나온 적이 있지만, 현재도 대외적으로 매각 입장을 철회한 상태다.
 
과거 한일합섬 계열이었다가 분리된 부국증권(001270)도 호사가들의 소문만 무성한 후보다. 대주주인 김중건씨 일가의 지분율이 24.1%로 상대적으로 낮고,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증권사의 2대주주(12.7%)가 리딩투자증권이라는 점도 부각된다. 하지만 역시 대주주의 의지가 관건이다. 유화증권(003460)한양증권(001750)은 대주주 지분율이 각각 64%, 40%로 높다는 점에서 매각의사를 떠나 매수자에게 부담요인이다.
 
지분양도제한 끝난 신생사들
 
증권사 M&A에서 눈여겨볼 또다른 대목은 3년전 설립인가를 받은 신생증권사들이다.
 
2008년 7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신규 증권업 허가를 받았던 8개 신생증권사들은 당시 증권업감독규정(현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라 3년간 대주주 지분양도 제한 조건이 붙었었다. 신생회사의 대주주가 증권업 라이센스만 노리고 인가를 받은 뒤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3년이 흐른 지금, 8개 증권사 가운데 모회사 경영난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증권업 허가 취소 및 매각 승인을 받은 ING증권(현 BOS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들의 대주주 매각제한 기간이 만료됐다. 국책은행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IBK투자증권 등 일부는 매각 대상과는 무관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대주주 차원의 지원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증권사들은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일부 신생증권사의 경우 최근 구체적인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도 나온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하면 자연스레 중소형 증권사들의 주요 수익원인 위탁매매 경쟁도 격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 증권사는 향후 2~3년이 매각과 생존의 관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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