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욱기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재계는 큰 경험을 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당수 국내기업들이 금융위기 하에서 세계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해외기업들이 움츠리는 상황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거센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쇠퇴한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들은 올해 엄청난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0년 재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경영전략의 핵심을 어디에 둘까. 3회에 걸쳐 올해 재계가 추구하는 목표와 예상되는 변화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올해 재계 주요기업들의 경영전략은 총수들의 신년사에서 바로 엿볼 수 있다. 그간 재계 신년사는 기업마다 강조점이 좀 달랐다. 내실경영을 강조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곳도 있었다. 도전과 혁신, 창조 등 새로운 기업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대부분 기업에서 큰 공통점이 나타난다. 바로 '글로벌 경영'이다.
움츠리기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 장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사업기획 포착을 위해서라면 지구촌 그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겠다고 총수가 선언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 해외공장생산 사상 첫 국내추월
현대·기아차그룹은 오는 4일 신년사를 내놓는다. 여기에서 그룹은 올해 경영목표를 제시할 예정이다. 핵심내용 중 하나는 올해 현대차 해외공장 생산목표가 국내공장을 사상 처음으로 능가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올해 해외공장 생산·판매목표는 250만대 가량.
특히 현대차는 올헤에 중국, 인도, 미국 등 해외공장에서 176만대를 생산·판매할 계획이어서, 국내공장 생산·판매량을 6만개 가량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메인드 인 해외 차량`과 `메이드 인 코리아 차량`간 역전현상이 사상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불황기가 선진 자동차 메이커를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 아래 `글로벌 공격 경영`을 내년 경영 모토로 삼은 것이다.
현대차의 이같은 글로벌 경영은 정몽구 회장의 세계적 위상도 크게 높이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정 회장을 `2010년 파워리스트` 3위 인물로 선정했
다.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세번째로 영향력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의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 6위에 올랐다가 이번에 3계단이나 상승했다.
모터트렌드는 "미국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의 판매가 소폭 증가에 그친 데 비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판매는 대폭 증가하고 있다"면서 정 회장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 절반 해외서 움직이겠다"
지난해 해외사업 정상화를 선언했던 한화그룹의 글로벌 사업 박차는 올해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김승연 회장의 각오가 특히 남다르다. 김 회장은 필요하다면 올해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글로벌 영토확장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화의 획기적인 미래수익원을 창출할 해법을 구하기 위해 지구촌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0년은 특히 한화의 글로벌 성장엔진을 본격 가동하는 원년"이라며 "해외시장 개척을 가속화하는 `극기상진(克己常進)`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해외시장에서의 발전상에 대해서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석유화학은 중국 PVC공장에서 상업생산을 준비중이고 중동지역에서는 국내업체 최초로 합작 플랜트 건설착공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대한생명도 지난해 성공적인 베트남 시장개척에 이어, 중국에서의 본격적인 보험진출을 가시화하고 있으며 건설부문도 중동지역에서 발전 플랜트 공사를 잇달아 수주해 해외사업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L&C의 자동차 부품사업 등 중국, 중동, 동남아시아, 미주 등 세계 각국에서 글로벌 한화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통해 중국사업 승부수를 던진 SK그룹과, 이미 해외매출이 국내매출을 능가한 두산그룹, 해외에너지 및 자원개발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중인 STX그룹 등도 글로벌 사업개척을 강조하고 있다.
◇"해외진출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두산그룹 박용현 회장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두산만의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장추구 주무대는 글로벌 시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도 매출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릴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과거 1980~90년대처럼 진출 자체에 의미를 두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의 가치 창출과 수익을 전제로 지역과 제품에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밥캣, 밥콕, 스코다 파워 등 해외 계열사들과의 효율적 통합에 따른 시너지 극대화와 현지 밀착 마케팅을 활용한 러시아, 남미와 같은 신흥시장 공략 강화도 주문했다.
강덕수 STX 회장은 성공적 사업 수행을 위한 2010년 중점 전략의 맨머리에 해외신시장 개척을 올렸다. 그 다음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꼽는 등 1,2위 전략을 모두 글로벌성장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웠다.
아울러 경영혁신 시스템 구축, 핵심 원천기술 확보, 글로벌 인재 육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올해 수주 33조원, 매출 25조원의 경영성과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밥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고사성어인 `파부침주`(破釜沈舟)를 거론하며, 임직원들의 마음가짐 혁신을 주문했다. 최 회장은 최근 임원인사와 중국법인통합 등 조직개편을 통해 중국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유통도 세계로, 세계로
전통적으로 내수산업 정도로 여겨져왔던 유통업계의 글로벌화도 신년사에서 크게 강조되고 있다. 다른 여느해보다 뚜렷하게 달라진 현상이다.
신세계는 이마트의 중국사업에 글로벌화에 주안점을 뒀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고객가치를 극대화 해야한다" 며 질 좋은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체질을 갖추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중국 사업은 이미 오픈한 점포 효율성을 높이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점포의 오퍼레이션을 표준화하고, 상품 경쟁력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우수한 인재를 꾸준히 확보하고 양성하는 등 중국 사업 성공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강조했다.
CJ그룹 손경식 회장 역시 `글로벌 그레이트 CJ`로의 도약을 강조하고 나섰다. 손 회장은 신년사에서 "변화의 시기는 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올해는 글로벌 기업을 향한 힘찬 도약을 준비하는 해로서 R&D 활성화, 마케팅 선진화, 사업구조조정 및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과 사업화에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강도높은 글로벌화 추진도 주문했다. 손 회장은 "글로벌화를 통해 시장 기회를 확보하고 사업 규모의 확대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 "중국에서 쌀을 이용한 식품가공사업을, 필리핀에서는 코코넛 열매의 껍질을 활용하는 추잉껌의 원료인 자이로스 가공사업을, 그리고 인도에서는 홈쇼핑 사업을 준비중"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롯데 브랜드의 세계화를 들고 나왔다. 신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롯데라는 브랜드는 `믿음을 주고`, `창조적이고`, `즐거움을 준다` 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면서 "우리가 찾아가는 어느 국가, 어느 도시에서도 롯데는 참신하다는 이미지로 각인돼야 할 것"이라고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의 해외시장 개척 결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지난 10년간 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시장을 넓혀 왔다"면서 "이제는 더욱 도전적인 자세로, 중동 ․ 중남미 ․ 아프리카 지역까지 새 시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