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제9회 시즈오카 국제 오페라 콩쿠르(Mt. Fuji International Opera Competition of Shizuoka)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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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음악과 예술을 위해 일본이라는 먼 곳까지 와서 정성을 다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찡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참가자가 노래한 뒤 러시아 참가자가 연이어 무대에 올랐는데 뭉클하더군요. 이스라엘 참가자는 일본까지 오는데 이틀이나 걸렸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총을 들고 뛰어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음악을 위해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 대단했습니다.”
시즈오카 국제 오페라 콩쿠르는 일본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를 추모하기 위해 개최하는 경연대회로 시즈오카현에 있는 하마마츠 시(市)에서 열리고 있다. 하마마쓰 시는 세계적인 피아노 브랜드인 야마하 피아노, 카와이 피아노 등을 생산하는 도시로 유명하다. 3년 주기로 열렸던 이 콩쿠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올해 6년 만에 열렸다.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바리톤 한명원, 소프라노 박현주, 테너 문세훈 등이 있다.
올해 콩쿠르는 세계 정상급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성악가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전 세계 33개국 271명이 참가한 이번 콩쿠르에선 예선에 11개국 60명이 진출했고, 1차 예선을 거쳐 총 16명이 2차 예선에 올라갔다. 16명 중 한국이 6명이나 차지했다. 최종 결선 끝에 1~3위를 한국 성악가들이 차지하는 성과도 냈다. 바리톤 박사무엘, 테너 박지훈, 바리톤 김정래가 각각 1~3위를 차지했다.
최 단장은 2008년부터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그는 “과거엔 일본이 성악 분야에서 강세였지만, 이제는 한국 성악가들이 더 높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번 콩쿠르에서도 일본의 많은 음악 관계자가 ‘한국을 배워야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에선 한국 사람들이 노래를 잘하는 이유를 많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어가 일본어보다 발음이 편한 점을 그 이유로 꼽고 있고요. 한국 성악가들이 일본 성악가보다 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며 이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하는 점도 높게 평가받고 있어요. 이번 콩쿠르에서도 일본 참가자는 가만히 서서 노래를 불렀지만, 우리나라 참가자들은 연기를 하며 무대를 사로잡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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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콩쿠르 우승자 박사무엘은 현재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2위 박지훈은 서울시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3위 김정래는 스위스에서 머물며 성악가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최 단장은 “이번 우승자뿐만 아니라 탈락자 중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성악가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국립오페라단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콩쿠르처럼 국립오페라단도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일에 앞장설 계획이다. 2025년을 목표로 ‘한중일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의 국립 및 민간 오페라 단체들과 접촉 중이다. 최 단장은 “최근 국립문화예술단체 기관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장관이 ‘국립오페라단은 국제적인 페스티벌이 없느냐’고 물어봐서 한·중·일과 협업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며 “문화예술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장을 만들어 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