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설 세계 5위의 한국 건설업계가 지구촌 곳곳에서 쌓아올린 신화의 금자탑은 하나둘이 아니다. 세계 최장의 현수교인 튀르키예의 차낙칼레 대교를 비롯,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 복합 리조트 등 한국 건설업체들의 뛰어난 시공 능력과 불굴의 도전 의지를 보여주는 건축물은 해외 어디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 위상은 물론 한국인의 자부심을 높여주기에 충분한 성과물들이다.
그러나 이번에 무더기로 발견된 LH(한국토지주택공사)아파트 부실 시공 사례는 건설 강국의 긍지와 명성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건설 현장의 고질적 악습으로 꼽혀 온 적당주의와 안전 불감증, 비리의 먹이사슬 등이 아직도 난마처럼 엮여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28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성수대교 붕괴를 계기로 설계·감리·시공의 부실을 뿌리뽑고,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했던 업계의 다짐이 면피성 ‘쇼’에 지나지 않았는지 한숨이 나올 정도다.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무량판 구조였다는 점을 알고도 업체들이 공사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로 2010년대 후반부터 슬금슬금 다시 채택했다는 사실에선 분노마저 금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문제는 카르텔만이 아니다. 공무원, 공기업과 건설사로 이어진 이권 카르텔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부실 시공의 근본 원인인 건 분명하지만 감춰진 적폐 또한 적지 않아서다. 이런 점에서 제도 자체가 미비한 것이 아니라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공사 단계마다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후진적 문화를 수술해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건설 한국의 미래를 좀먹는 병폐의 대수술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권 카르텔의 꼭대기에 있는 LH 퇴직자 등의 전관 예우를 근절해 부실 틈새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첫단추일 뿐이다. 현장의 불투명한 자재 관리와 원리·원칙 경시 풍조, ‘빨리빨리’ 관행과 수익 우선주의 등 수십년 악습이 모두 청산 대상이다. 제도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한편 상습적 부실 공사에 징벌적 페널티를 가하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수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