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베트남 국적으로 고종사촌지간이었던 선원 A(당시 32세)씨와 B(당시 32세)씨였다. 2015년 2월부터 근무해 당시 1년 4개월 넘게 광현803호에서 승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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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에도 A씨가 세이셀 군도 내 한 섬에서 선박이 정박 중인 틈을 이용해 선장에 허락도 받지 않고 육지에 상륙했다가 발각돼 선장으로부터 “하선시켜 버리겠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광현803호는 같은 달 6월 9일 출항해 조업을 하다가 같은달 19일 어장 이동을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당일 오후 광현803호 선원들은 1시간 동안 작업을 한 후, 선장의 제안으로 회식을 했다. 회식엔 선장·기관장과 함께 A씨와 B씨를 포함해 베트남 선원 6명, 인도네시아 선원 5명이 참여했다. 선원들은 회식에서 술을 나눠 마셔 취기가 올랐다.
◇사소한 말다툼에 격분해 범행
이 자리에서 기관장은 A씨와 B씨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 A씨 등은 ‘하선 경고’를 언급하며 “가끔은 좋지 않다”고 답을 했다. 이 대답으로 결국 평소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한 선장·기관장과 A씨·B씨는 말다툼을 벌였다. 기관장은 화가 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선장은 남아 이들과 말다툼을 계속했다.
말다툼 도중 갑자기 B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간 후 흉기를 들고 왔다. B씨는 흉기를 허리춤에 찬 채 선장을 위협했다. 선장에게 놀리는 듯한 말을 한 후 빰을 날렸다. 다른 베트남 선원들이 말리자 이들을 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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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벗어나 조타실로 올라간 선장은 베트남 선원 전원을 호출했다. B씨는 흉기를 허리춤에 찬 채 A씨 등 다른 베트남 선원들과 함께 조타실로 올라갔다. 그는 조타실에 도착하자마자 앉아있던 선장의 얼굴을 폭행했다. 이후 흉기를 뽑아 든 후 다른 베트남 선원들에게 “너희들은 나쁨 놈들”이라고 말하며 이들을 손으로 폭행했다.
그러던 중 B씨가 흉기를 떨어뜨렸다. 떨어진 흉기를 베트남 선원 1명이 들고 조타실 밖으로 나가 바다에 버렸고, A씨와 B씨를 제외한 다른 베트남 선원들도 모두 조타실 밖으로 나갔다.
이를 본 A씨가 식당으로 가 다른 흉기를 가지러 간 사이, 선장은 흉기를 놓친 B씨에게 달려들었고 몸싸움 끝에 B씨를 제압했다. 흉기를 들고 조타실로 들어온 A씨는 B씨가 제압당한 모습을 보고 선장 등 뒤에서 흉기로 수십회 공격했고, 결국 선장은 과다출혈도 숨졌다.
◇동료 베트남 선원들까지도 폭행
당시 빛이 거의 없던 조타실 밖에는 베트남 선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어두운 조타실 내부에서 A씨가 맨손으로 선장을 공격한다고 생각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A씨는 곧바로 평소 불만이 많았던 기관장까지 살해하겠다며 기관장 침실로 이동해 잠을 자고 있던 기관장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숨지게 했다.
선원들은 선장과 기관장의 피습 사실을 선실에서 휴식 중이던 한국인 항해사에게 알렸다. 항해사는 선장과 기관장이 숨진 것을 확인하고 다른 선원들과 함께 A씨와 B씨를 찾아 나서, 몸싸움 끝에 숨어 있던 이들을 제압해 선실에 가뒀다.
항해사는 이후 선사에 사건 내용을 전달했고, 선사는 이를 해양경찰에 신고했다. 해경은 수사팀을 유족 등과 함께 선박이 입항 예정이던 세이셸 군도 빅토리항으로 보냈다. 광현803호는 24일 새벽 빅토리아항에 도착했고, 해경 수사팀은 배에 올라 A씨와 B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후 항공편을 이용해 같은 달 30일 A씨와 B씨를 한국으로 압송했다.
해경과 검찰은 A씨와 B씨를 살인과 특수폭행 혐의의 공범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A씨와 B씨는 수사기관과 재판에서 “살인을 계획하거나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A씨는 오상방위를, B씨는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법원은 살인과 특수폭행을 각각 A씨와 B씨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했다. 1심은 A씨에게 살인 혐의만 인정해 무기징역, B씨에겐 특수폭행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피해자들을 연달아 무참히 살해하는 등 범행 결과가 매우 중대하고 범행 내용이 반인륜적이다. 범행 수법 또한 매우 잔혹하고, 범행 경위도 매우 좋지 않다”며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과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