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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은 불자를 친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그를 만나려면 조건이 있었다. “부처에게 3000배를 하고 오라.” 고승을 만나러 해인사에 줄을 섰던 정치인과 자본가, 유력가는 이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면서 불자에게는 스님에게 삼배(세 번 절함)를 하라고 일렀다. 조선의 억불숭유로 추락한 불교계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차원이었다. 앞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남이 불발한 것도 사실은 삼배 탓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 오면 방장이 어른이라며 암자에서 큰절로 내려오지 않아 만남이 무산”(한겨레 2012년 3월8일자)했다.
스님이 남긴 법어는 인구에 회자한다. 스님은 1981년 1월20일 남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계종은 전두환 신군부가 불교계를 탄압(1980년 10·27 사태)하고 종단이 내분하는 상황이었다. 사태를 진정시킬 역할이 성철 스님에게 주어지며 조계종 최고 지도자 종정에 추대됐다. 그러면서 이같이 언급한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스님만 알 텐데, 숱한 이들의 입에 ‘산과 물’이 오르내렸다.
종정으로 추대되고 언론에 나와서는 별안간 “내 말에 속지 마라. 나는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조계종 최고 지도자이자 열반에 든 고승이 한 얘기였기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자 원택 스님은 이를 “깨달음은 스스로 얻는 것”이라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1987년 부처님오신날에는 이렇게 설파했다. “사탄이여 어서 오라.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한다. 당신은 본래 거룩한 부처이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으나 뭇사람들에게는 파격적인 법어였다.
스님이 재가 수행자에게 남긴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 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불교 수행의 일반적인 구조인 ‘자기 견성’, ‘공덕의 회향’, ‘이타의 실천’과 닿아 있다. 스님은 재가자 역시 출가자와 다름없이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1993년 11월4일 입적했다. 향년 81세, 법랍(승려가 된 뒤 나이) 58세였다. 해인사는 다비식(화장)을 하고 사리 110과(顆)를 확인했다. 비공식으로 나온 사리 개수를 합하면 200과 가까이 됐다. 평생 누더기 장삼만 걸치다 간 삶이었다. 40년 가까이 기워입은 승복은 평시든 법회든 가리지 않고 입었다. 생전에 고승이 남긴 말이다.
“나는 제일 못났기 때문에 좋은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잔뜩 떨어진 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