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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예술로부터 100년 독립전쟁[이수연의 아트버스]<9>

오현주 기자I 2022.06.17 00:01:00

▲오스카 슐레머 ''총체예술의 실험''
기계화·창조성 경계를 넘나든 ''삼부작 발레''
캔버스 벗어나 건축·연극 등에 확장해 표출
면·선·색 이용해 사물 정리하고 단순화시켜
미술 넘어 시각예술 통합 총체예술로 진화

오스카 슐레머가 1922년 유화물감과 템페라로 그린 회화 ‘무용수’(몸짓). 공간과 인체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슐레머의 작업을 한눈에 보여준다. 현대 종합예술에서 무대의상이 댄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슐레머는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길 바랐다. 불편한 의상 때문에 댄서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 불편함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독일 뮌헨 피나코텍미술관 소장.


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난 주말 유치원생 조카의 발레공연 ‘백조의 호수’를 보고왔다. 막이 오르고 통통한 햇병아리들이 줄지어 서서 발끝을 들고 등장하자 그 깜찍한 모습에 객석은 탄성으로 가득했고, 공연 내내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아기 무용수들의 작은 키 때문에 동작은 잘 보이지 않았고, 짧은 팔을 흔들어대는 백조의 날갯짓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를 가득 채운 것은 음악이나 무용의 테크닉이 아니라 ‘귀여움’이라는 분위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발레공연조차 기술 그 자체보다 무용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압도할 때가 있다. 가령 공연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무용수의 의상과 무대장치, 무대미술 등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건축과 디자인, 미술의 요람이라고 불린,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 예술종합학교 ‘바우하우스’의 작가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시각·지각의 총체성’이다. 시각·지각의 총체성은 미술과 디자인이 단순히 캔버스 속 회화나 종이의 색깔·무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는 환경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가 설립한 이래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요하네스 이텐 등 세계적인 미술가를 앞세워, 멀티미디어 선구자인 라즐로 모홀리 나지,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어 등 쟁쟁한 이들이 교수진을 맡아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염직·그래픽·산업디자인·타이포그래피·무대의상·연극·무용 등을 통합해 실험했고, 이를 시각종합체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대 건축·미술의 요람 바우하우스…총체성에 주목

바우하우스에서는 일반적인 예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을 포함했는데, 신체훈련, 조각적인 안무, 분위기 장치, 무대기술, 총체극장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신체훈련과 조각적인 안무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해, 사진·영상을 통해 촬영해낸 과학적인 자료들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데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교과목이었다. 장식적이고 예쁜 예술을 넘어서서 스포츠와 무용 등을 통합한 형태라고 할까.

또한 분위기 장치와 무대기술, 총체극장은 색채와 형태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조명과 디자인 등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물론 이러한 실험에는 기계·전기·철구조물 같은 20세기 테크놀로지도 등장하지만, 동시에 어린이 장난감이나 알록달록한 놀이기구 같은 장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바우하우스 교과의 특징을 두고 이텐은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파티가 되고, 파티가 놀이가 된다”는 설명으로 깔끔하게 요약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의 이 같은 파격을 한방에 드러낸 이가 오스카 슐레머(1888∼1943)다. 독일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연극인이자 안무가로 활약했던 그는 바우하우스의 엠블럼을 제작하기도 했다. 슐레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삼부작 발레’(1922)는 초기 바우하우스가 표방한 인체·환경·디자인·기술·놀이가 결합한 이상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인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했던 슐레머가 시도한 ‘총체예술’이다.

오스카 슐레머가 제작한 ‘삼부작 발레’(1922)의 한 장면. 나선형의 스커트, 손을 연장한 삼각기둥, 금속성 헤일로 등 독특한 무대의상이 시선을 끈다. 아래는 ‘삼부작 발레’를 재현한 설치작품. 독일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미술관 소장.


그런데 처음 이 작품을 보면 누구나 온갖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 요상한 의상과 동작은 무엇이고, 저 특이한 디자인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100년 전 저런 비주얼을 만들어냈다고? ‘연극적 무용’으로 제작한 작품에서 단연 도드라지는 건 무대의상이다. 전혀 다른 색채와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3막의 구성에는 남자 무용수 2명, 여자 무용수 1명이 등장하는데, 무려 12개의 춤과 18벌의 의상을 선보인다.

첫 번째 신 3개는 레몬·노란색 배경 속에 즐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중간의 신 2개는 분홍색 무대에 축제적이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마지막 3개의 신은 검은색의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마치 로봇처럼 보이는 의상을 입은 댄서들은 보편적인 기계로,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변형된다. 다시 말해 각각 원, 삼각형, 사각형, 원뿔, 직육면체, 정육면체로 등장하는 댄서들은 춤과 설치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무대장치인 것이다. 구불구불한 나선형의 어지러운 스커트, 손을 길게 연장한 삼각기둥, 둥글둥글한 구로 이뤄낸 보조물, 여기에 금속성 헤일로까지 더해 댄서들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하게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바로 사람의 몸·선·색·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는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의 몸, 공간에 대한 연구…새로운 예술로 탄생

특히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1912)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쇤베르크가 서양 클래식 음악을 정형적인 12음계에서 해방시켰던 것처럼 슐레머 역시 발레를 오페라와 팬터마임의 역사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새로운 예술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 슐레머는 ‘인간의 몸동작보다 우월한 기계화한 인형의 몸’과 ‘창조를 향한 갈망’을 꼽았는데,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요소를 종합해 이처럼 특이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이 작업을 위해 슐레머는 수많은 습작의 과정을 거쳤다. 눈에 띄는 점은 인간의 신체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그의 습작은 면·선·색을 이용해 사물을 단순화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도드라진다. 바둑판처럼 그린 무대 위에 선 기하학적 인간의 몸은 효율적이면서도 괴기스러울 정도로 독특해 보여서 ‘기계화’와 ‘창조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실험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20세기 초 추상미술로 다가가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과정과 닮아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근대 세상에서 움직이는 기계와 인간이 가진 힘의 근원을 찾아내 그 정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오스카 슐레머가 ‘삼부작 발레’를 제작하기 전 습작한 ‘공간 속 인물상’(1922). 회화작품에서 나아간, 마치 기계처럼 도형화·기호화한 공간과 무대의상, 인체의 움직임이 보인다.


미술을 넘어서서 시각예술을 통합해 총체예술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슐레머와 바우하우스는 결국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노동당, 나치의 이념과 갈등을 빚었고, 1932년 바우하우스는 폐쇄됐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그러하듯 ‘삼부작 발레’의 유산은 동시대 미술에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한국작가 양혜규는 ‘상자에 가둔 발레’(2013·2015)란 작품으로 슐레머의 작업을 새롭게 해석해 오마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산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우하우스와 슐레머가 보인 태도다. 그들은 시각예술이 가진 총체적인 경험의 힘을 믿었고, 진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관객의 경험을 더 새롭게 하고자 했다. 만일 오늘 건축물을 보거나 공연을 감상하거나, 혹은 어느 전시에서 강렬한 감각에 전율했다면, 바우하우스의 실험에 그 감동을 빚졌다고 할 것이다.

※바우하우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 바이마르를 기반으로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독일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Hausbau)를 뒤집은 것이다.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해 세운 만큼,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 했다. 초기에는 공예학교 성격이 강했고 1923년에 이르러서야 예술과 기술의 통일이란 연구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바우하우스만의 독특한 교육방침을 정착시킨 것도 이즈음. 예비과정에서 반년간 기초 조형훈련을 받고 토목·목석·금속·도자기·벽화·글라스그림·직물·인쇄 등 각 공방으로 진급하는 식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뒤늦게 건축공방(1927)이 세워졌는데, 그전까지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종합예술은 오스카 슐레머가 맡은 ‘연극(무대)공방’에서 담당했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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