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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규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사기로에 놓인 VC들이 적지 않다. 한참 전 만든 펀드로 수년간 연명하는 VC들이 한둘이 아니고, 일부는 자본잠식 상태거나 전문인력 부족, 1년간 미투자 등으로 경고를 받았다.
중소기업차업투자회사전자공시(DIVA)를 보면 에쓰비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각각 결성해 25년이 만기인 펀드 2개를 운용 중인데, 이후 신규 펀드가 없다. 이곳은 상근 전문인력 2인을 갖춰야 하는 창투사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올해 3월 중기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문화 콘텐츠 투자에 강했던 티지씨케이파트너스는 총 4개 펀드를 운용 중인데 3개는 2년 내 만기고, 나머지 1개는 2026년 운용이 끝난다. 이 하우스는 자본잠식률이 50%를 초과해, 올 3월 중기부가 경영 건전성 개선 조치를 내렸다.
투썬인베스트먼트는 올해 만기인 펀드 2개와 이미 2019년 만기였던 펀드 1개를 보유했다. 한빛인베스트먼트도 내년 만기인 펀드 1개만 운용 중이다. 비오케이창업투자는 현재 보유 중인 펀드가 총 3개로 1개는 만기가 지났고 나머지 2개는 각각 올해와 2024년 만기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규 펀드를 조성하지 못하고 기존 펀드로만 버티고 있다는 것. 제이앤티인베스트먼트처럼 이미 만기가 끝난 펀드만 보유한 곳도 눈에 띈다.
통상 모태펀드 등 정책금융기관 출자사업들은 펀드 운용 기간을 7~8년으로 설정하고, 투자기간을 3~4년, 나머지는 회수기간으로 잡는다. 투자기간인 3년 내에는 보통 조합운용의 대가로 관리보수를 약정총액에서 2.1~2.5% 수준으로 설정하고, 회수기간에 돌입하는 3년 이후에는 투자한 뒤 회수하지 않은 금액(투자 잔악)에서 해당 비율 수준으로 측정한다. 회수기간엔 관리보수가 줄 수밖에 없어 VC들은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 등 고정비 충당을 위해서는 신규 펀드 결성이 필수다.
자체 보유자금이 많아 본계정 투자가 활발한 VC가 아니라, 펀드를 기반으로 하면서 회수기간에 접어든 펀드만 보유하고 있는 곳들은 자본금을 까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리키인베스트먼트의 경우 실제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결국 창투사 지위를 잃은 대표적 사례다. 국내 한 VC 임원은 “관리보수를 확보하려면 신규 펀드를 조성해야 하는데, 역량이 안되면 인력이 떠나고 하우스는 부실해져 피투자기업은 아무 도움을 못 받는다”며 “포트폴리오가 망가지고 운용 중인 모태펀드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포트폴리오에 어떤 분야를 담았는지에 따라 희비가 극도로 엇갈릴 수 있다. 바이오를 시작으로 산업 전반의 스타트업 밸류가 타격을 입고 있는 탓이다. 바이오 투자 비중이 큰 펀드는 수익성이 반토막 나는 등 크게 훼손된 가능성이 높기에 VC들 발등에 불똥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다.
◇대형 VC에 밀려, 금리 인상에 치여
이들이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이유는 대형VC와의 출자사업 경쟁을 뚫기 힘든 탓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넘치는 유동성과 맞물리면서 사모펀드(PEF) 운용사뿐 아니라 VC들도 펀드 대형화에 힘줬고, 거대한 정책자금과 민간자금이 대형 펀드로 흡수됐다. 큰 돈을 저축할 때 제2금융보다 제1금융을 선호하는 것처럼, LP들도 자본력 세고 펀드 규모가 큰 VC들을 선호한다. 결국 대형펀드를 굴리는 대형 VC들은 더 많은 LP들의 선택을 받고 좋은 스타트업 발굴 기회를 선점하면서 격차를 더 벌려온 이유다.
트랙레코드나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신생이나 중소형 VC는 모태펀드와 기관투자자들의 출자를 통해 펀드를 조성하며 생존해왔다. 그러나 작년과 재작년 벤처투자 붐으로 캐피탈사나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마다 직접 VC 투자에 나서는 비중이 늘면서 자연스레 VC 출자 규모가 줄었고, 출자자 모집 경쟁이 더 세졌다.
최근 금리인상 기조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유동성 위축으로 모험자본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출자 기조도 더욱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VC 출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잇달아 출범하면서 끌어올 수 있는 민간자금 파이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선정돼도, 매칭할 LP들을 모집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 이유다. VC들은 정책기관 출자사업에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후에도 나머지 자금을 LP들 출자금으로 매칭하지 못하면 자격을 박탈당하고 일정기간 사업 지원 금지 등 패널티를 받는다.
VC업계 다른 관계자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 경쟁률이 배로 늘어난 건 물론 요즘 금리 인상으로 기관투자자들이 안전자산 투자를 늘리고 모험자본인 VC 출자 규모를 줄이면서 모태펀드에 매칭해줄 LP들 돈이 줄고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주니어가 아닌 3년 이상 경력자로 펀드를 담당할 수 있는 심사역이 부족한 것도 신생 및 중소형 VC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이유로 부익부빈익빈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결국 VC들 사이에서도 자금력이 세거나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 대형VC, 금융지주 등이 중소형 VC를 사들이면서 손바뀜 현상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자회사인 창투사 메가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JB금융지주에 매각됐고, 같은 기간 신기사 위드윈인베스트먼트는 부동산투자사 스타브리지에 인수됐다. 창투사 수림창업투자도 지난해 3월 DGB금융지주 품에 안겼다. 앞의 VC 고위 임원은 “VC 구조조정은 2~3년 전에 터졌어야 했으나 코로나19로 각 정부가 시장에 돈을 뿌리면서 터질 시기를 미뤄준 셈으로, 이 위험한 상황을 잘 버티는 하우스는 크게 성장할테지만 역량이 없는 곳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