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5월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출구 인근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살해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결론냈지만 범인 김씨가 피해자보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을 보내고 이후 들어온 여성을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 혐오 범죄’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 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은 주요한 사회갈등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을뿐만 아니라 상황은 심각해져만 가고 있다.
◆젠더갈등 더 커졌다... 20대 70% "젠더갈등 심각"
2016년 7월에는 게임업체 넥슨의 성우 김자연 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리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넥슨 보이콧 운동이 일었다. 이 때문에 넥슨은 김씨가 맡았던 게임 캐릭터의 성우를 교체했다.
2018년 11월에는 이수역 인근 맥줏집에서 서로를 향해 "한남충", "메갈"이라는 말을 주고받다가 서로 상해를 입힌 남녀가 쌍방 폭행 혐의로 입건되는 일도 발생했다.
2013년부터 한국 사회의 공공 갈등에 관한 조사를 수행해 온 한국리서치와 사단법인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5년에는 남녀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30%에 불과했으나 2017년 40%, 2019년 45%로 매년 높아졌다.
지난 2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남녀갈등 정도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에 63%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2030 세대는 75% 이상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젠더갈등이 심해지는 이유에 대해 24세 남성 A씨는 "페미니즘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현 정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할당제, 여성 우선 주택, 여성 가산점 제도를 예로 들며 "여권 신장이 남성의 권리를 깎아내리면서 이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A씨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여당이 침묵했던 것에 대해 "(정권에) 쓸모 있는 사건에만 (여성 인권 옹호) 목소리를 높인다“며 집권 여당의 ’내로남불‘식 태도도 문제로 제기했다.
최선(25세·여) 씨는 SNS의 활성화도 젠더갈등 논의가 활발해진 하나의 이유라고 했다.
최씨는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유된다"며 "그동안 개인의 경험으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젠더갈등’에 대해 가부장적인 사회 속 성차별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며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하는데 개인과 개인, 성별 간의 문제로만 다루면서 논점이 벗어나는 게 현재 갈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확대·재생산되는 젠더갈등
2030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젠더갈등을 더 심각하게 느끼는 데에는 온라인에서 젠더 갈등과 혐오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20세 여성 B씨는 “현실에 젠더갈등이 분명 있긴 하지만 인터넷이 이걸 심화시키는 것 같다”며 “익명성이 강하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는 말을 유포한다”고 말했다.
25세 남성 C씨도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문화가 과대대표되는 상황이 (젠더갈등)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다. 그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세 줄 요약' 콘텐츠만을 읽으며 그 글이 왜곡됐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커뮤니티 이용자들) 눈에는 자신들이 젠더 갈등의 피해자로 보이기 때문에 갈등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젠더갈등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면서 "온라인 상에서 확대·재생산되는 혐오 표현이 젠더갈등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이어 "20대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실제 현실에서 차별을 느낀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느끼는게 더 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20대 남성이 생각하는 공정성이 기성세대와 여성이 생각하는 공정성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 '화합'보다는 '갈라치기' ...젠더갈등으로 표심 엿보는 정치권
지난 5년 동안 젠더갈등을 ‘심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다층적 이슈가 젠더 문제 하나로 해석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현재의 젠더갈등 상황을 갈등이 아닌 ’혐오‘로 진단하며 "남녀 모두 갖고 있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젠더 문제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말했다.
갈등이 커지는 동안 정치권에서는 젠더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표심'을 잡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남녀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해 예비군으로 양성하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안했다.
여성의 군복무와는 별개로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대 남성들의 불만은 이전 세대의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위축된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여성들의 불만은 오랜 시간 이어진 성차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치권이 남녀 대결구도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며 "한쪽의 이득을 빼서 다른쪽에 부여하는 '제로섬 게임'방식이 아니라 참가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포지티브 섬'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정치는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장"이라며 "정치권에서 필요한 것은 갈등이 아니라 이해와 화합”임을 강조했다.
/스냅타임 이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