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에서 2년 전 분양한 재건축 아파트에서 부적격당첨자가 나와 1가구를 다시 모집했는데 무려 4만6850명이 몰렸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약 4억~5억원 싸기도 했지만 분양가가 9억원 미만이라 중도금 대출이 가능해 목돈마련이 어려운 30~40대 실수요자들이 몰렸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평가다.
비슷한 광경은 지난 7일 진행된 방배 그랑자이 청약현장에서도 목격됐다. 평균 8.2대 1의 경쟁률로 1순위를 마감했다. 싸늘한 부동산시장에서 분양가가 평당 5000만원 안팎이란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특히 소득이 안정적인 30~40대가 대거 몰렸다고 한다. 건설사가 중도금을 3회 연체해도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연체 이자도 5%만 부과하기로 한 마케팅이 주효한 결과다. 현재 분양가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이 막혀 있는데 이런 조건이면 사실상 중도금 대출을 받는 효과가 있어서다.
일부에서는 청약수요를 노린 꼼수대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30~40대 실수요자들은 “건설사라도 대출을 해주니 감사하다”는 반응이 주류다. 일괄적인 고강도 규제 탓에 자산 증식이나 개인의 선택권이 제약받는 현실에 대한 반발 성격이 강하다.
얼마 전까지 소득이 높아도 자산이 넉넉지 않은 30~40대는 대출규제의 직격탄을 맞아 청약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이들이 강남권처럼 자식 교육이나 안정적 거주환경을 찾아 이사가고 싶어도 대출이 막혀 ‘울며 겨자먹기’로 청약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현금 부자들이 미계약분을 쓸어 담는 이른바 ‘줍줍’ 현상이 심화해 정부의 규제가 부자 배만 불린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욕망을 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에서는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아무리 대출을 틀어막아도 수요가 넘치면 우회로가 등장하리라 본다. 그게 시장의 법칙이다. 서울권의 웬만한 입지는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게 현실이다. 다주택자의 투기가 걱정된다면 적어도 갚을 능력이 있는 무주택자에게는 중도금 대출 문을 열어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