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호 김형욱 기자] “일본에 비해 한 발 앞서 있던 상황에서 반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선 형국이다.”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국내 산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관세 등 교역여건 측면에서 일본에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부분들이 일부 상쇄됐다는 의미다.
다만 내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관세철폐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등 여전히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인 만큼 TPP 발효 전까지 업종별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게 중요하다.
◇한·미 FTA 선점효과 상쇄…업종별 희비 엇갈려
TPP는 사상 최대 규모의 다자 간 FTA로 관세 인하폭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시장을 놓고 한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일본은 TPP 참여로 이익을 보게 됐다.
TPP가 공식 발표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자동차부품 업계다. 일본산 자동차부품의 80%는 미국 시장에서 적용받던 관세 2.5%가 TPP 발효 직후 0%로 사라진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 업체들이 무관세라는 무기까지 확보하면 현대모비스(012330) 등 국내 업체들은 더욱 어려움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계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한·미 FTA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당장 내년부터 미국에서 무관세를 적용받지만 일본 업체들은 2.5%인 관세를 25년에 걸쳐 낮추기로 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민주당과 현지 자동차 업체들의 반발을 감안해 일본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부품과 완성차를 제외하면 나머지 업종은 TPP 타결에 따른 영향이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전자업계의 경우 스마트폰 등 대부분의 품목이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이미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또 TV 등 일부 가전제품도 TPP 참여국인 베트남에서 생산하면 무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은 베트남 공장을 신·증설 중이다.
철강산업은 TPP 무풍지대로 꼽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직접적인 경쟁관계가 아니라 관세 인하가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석유화학 업계도 제품의 90% 이상을 수출하는 중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아 별로 관심이 없다.
섬유·의류 업계는 TPP 타결을 반기는 입장이다. 세계 최대의 섬유·의류 수출국인 베트남 내 사업을 확대할 적기라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6일 배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TPP 체결로 베트남에 섬유·의류 관련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국내 섬유산업의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이는 기술력 강화나 디자인 연구개발(R&D)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PP 가입시 영향도 고려해야
TPP 협상이 타결됐지만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한·미 FTA의 경우 협상 타결 이후에도 미국의 반발로 자동차 분야 재협상을 할 정도로 난항을 겪었는데, TPP는 다자 간 협상인 만큼 참여국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현 시점에서는 FTA 체결을 확대해 온 한국이 일본보다 관세 등 교역조건에서 유리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TPP 발효 전까지 미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일본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했을 때도 이길 수 있는 기술력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TPP 타결로 한국이 일본보다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미 FTA 등을 통한 관세인하 효과가 일정 수준 상쇄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아울러 우리도 미국이 주도하는 통상질서에 합류할 필요가 있다”조언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해 “TPP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TPP에 가입할 경우 업종별 영향은 현재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면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국내시장 공략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국내 섬유산업은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식이다.
고일훈 코트라(KOTRA) 통상전략팀 차장은 “TPP에 가입하지 않은 현재와 가입한 이후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업종별로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산업계의 면밀한 분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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