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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권리금 法으로 보호…국회 법사위 통과

박종오 기자I 2015.05.07 00:04:49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앞으로 상가 세입자끼리 권리금(점포 시설비와 영업권 등 자릿값)을 주고받는 것을 건물 주인이 방해하면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 대표적인 지하 경제로 건물주의 약탈에 무방비였던 상가 권리금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누구나 5년간 한 점포에서 장사할 권리도 보장받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6일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자영업자 대책의 하나로 권리금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힌 지 7개월여 만이다.

핵심은 건물 주인이 상가 세입자끼리 권리금을 주고받는 걸 방해하면 손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기 3개월 전부터 계약 종료 시점 사이에 △기존 세입자가 주선한 새 세입자에게 건물주가 직접 권리금을 받거나 △세입자끼리 권리금을 주고받지 못하게 막는 경우 △임대료를 급격히 높여서 계약 체결을 무산시키는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새 세입자와 계약 맺기를 거절하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이를 어길 경우 세입자는 임대차 계약 기간 종료 후 3년 안에 건물주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배상액은 새로운 세입자가 내기로 한 권리금과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기준에 따라 산정한 계약 만료 시점의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넘을 수 없다.

다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건물주가 권리금 회수에 협력하지 않아도 된다. △새 세입자가 임대료를 낼 능력이 없거나 △임차인의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고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임대인이 상가 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 등이다. 이를 위해 세입자는 건물주에게 신규 세입자의 임대료 부담 능력 등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준대규모 점포와 국·공유재산, 세입자가 점포를 재임대하는 전대차 계약은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개정안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임대료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5년간 계약 갱신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담았다. 법 시행 이후 임대차 계약을 새로 체결하거나 갱신하는 세입자에게 적용한다. 현재는 서울의 경우 환산 보증금(보증금+월세×100) 4억원 이하만 보호 대상이다. 이 밖에 정부가 상가임대차표준계약서와 표준권리금계약서를 마련해 사용을 권장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 개선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부 임대인이 중간에 개입해 자영업자의 권리금을 약탈하는 피해 사례를 막는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풀어갈 과제도 많다. 현행법상 환산 보증금을 초과하는 상가 임차인은 임대료 상한 규제(연 9%)를 적용받지 않고,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건물주가 제소 전 화해(분쟁이 소송으로 번지기 전에 법원에서 화해를 성립하는 절차) 조서를 작성해 세입자에게 불리한 조항을 약정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논란이 컸던 재건축·리모델링 상가 세입자에게 퇴거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이번 법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영주 변호사는 “최근 권리금이 월세의 50~100배 정도에 형성돼 있어 건물주가 일부러 1년 6개월간 건물을 비워놓았다가 권리금을 챙기는 식으로 법 조항을 악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초로 권리금 법제화가 이뤄지면 상가시장의 지각 변동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데이다 대표는 “권리금이 과도한 상가 건물 가격이 하락하고 이를 보상받으려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높이는 등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영 김포대 부동산자산경영학과 조교수는 “자영업자 소득 신고가 불투명하고 입지·브랜드 등 보이지 않은 가치를 추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 권리금 산정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권리금 보호법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가 공무원연금 개정안 및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로 파행하면서 5월 임시국회에서나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시행과 동시에 임대차 계약이 진행 중이거나 새로 계약을 맺는 모든 상가 임차인들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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