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변신 이후 그에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어머니가 당당하게 내 아들은 은행원이라고 말씀하세요. 월급도 2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만 고무적인 건 아니다. 청원경찰에서 은행원이 된 첫 사례인 만큼 전국 각지의 청원경찰로부터 `비결`을 묻는 문의전화를 끊임없이 받는다.
“비결이 따로 있나요. 그냥 고객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정성껏 응대했을 뿐이에요. 조금 노력한게 있다면 은행일에 관심이 많아 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증권투자상담사 등 각종 금융자격증을 딴 것 정도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지만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그가 어떻게 여덟 차례나 고객으로부터 우수직원으로 추천될 수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음료수 좀 드릴까요? 옷을 좀 얇게 입고오신 것 같은데 춥진 않으세요?”라고 묻는 그의 눈은 고객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지점 특성상 연로한 분들이 많아 짐을 들어주는건 기본이고 열쇠를 분실해 문을 못열어 발을 동동 구르던 고객의 집까지 찾아가 담을 넘어 문을 따주기도 했다. 한 고객의 잃어버린 휴대폰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찾아준 일화는 더욱 유명하다.
“고객님이 은행 업무를 보다 휴대폰을 잃어버린걸 알았어요. 제가 알아보니 이미 누군가 주워서 용산전자상가로 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CCTV로 다 찍혔다`고 협박(?)을 했죠. 결국 무사히 고객의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친절한 나머지 젊은 여성 고객에게는 환심을 사기 위해 접근한다고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이쯤되면 고객만족 우수사원으로 은행장으로부터 표창을 받는건 당연한 일이다.
올해 서른 여섯. 적지 않은 나이다. 결코 녹록지 않았던 지난 세월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집안사정상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만 했어요,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백화점, 카드사, 음식점 등 안해본 일이 없어요.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난 후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 아무데서도 절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던중 어렵게 얻은 일자리가 바로 은행 청경자리였다. 누구보다 간절했고, 오랫동안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서비스 만큼은 자신있었다. “나이가 많다는건 단점일 수도 있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전 물러설 곳이 없었고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친절한 서비스는 기본이고, 은행 업무를 자세히 알고 싶어 금융자격증까지 취득한 그를 유심히 지켜본 지점장의 추천으로 채 계장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은행원이 됐다.
그가 맡은 업무는 고객이 은행에 오면 입·출금 등 가장 기본적인 업무를 처리해주는 창구 전담 텔러다. 청경 시절엔 창구 밖에서 고객을 친절히 안내하면 임무 끝이었지만, 지금은 직접 창구 안에서 돈을 만져야 하는 만큼 더욱 꼼꼼해져야 한다. 영업도 필수다. “예전엔 상품을 권유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게 바로 제 실적으로 이어지니 더 신경이 쓰이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객분들이 일부러 저한테 오셔서 상품을 가입해주세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의 목표는 이제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계약직 창구텔러는 2년만 지나면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우수한 직원은 그 후 면접 등 일정 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왕 이런게 된 거 더 열심히 해서 최고의 은행원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계약직이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면 또 기회가 주어지겠죠. 제가 잘해야 저 같은 사례가 더 많아질 것 아니겠습니까”
쑥스럽게 웃는 채 계장은“서비스매니저로서 몸을 쓰는 것보다 은행원으로서 돈을 만지며 머리쓰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며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무섭게 본인의 컴퓨터 앞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