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제 키워드)꿈틀꿈틀 `더블딥`

박기용 기자I 2010.01.01 08:00:01

석학들 "세계경제 더블딥 우려" 수출 위주 한국도 불안
美 상업부동산·韓 가계부채 등 안팎에 위험요소 산재
민간수요 회복·일자리 창출이 관건

[이데일리 박기용기자] 새해 우리 경제가 정부의 공언대로 5% 이상의 높은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히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침체에 다시 빠지게 되는 건 아닐까.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나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같은 석학들은 입을 모아 `더블딥` 위험을 얘기하고 있다.

▲ 최근 `비관론자` 대열에 합류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엔 경제사회국 산하 경제분석실도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 상황과 2010년 전망` 연례 보고서에서 성급한 출구전략과 달러의 경착륙 가능성이 더블딥을 일으킬 수 있는 2대 위험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이 대열에 합류,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언뜻 봐선 낙관보다는 비관의 목소리에 힘이 기운 모양새다.

2009년 3분기 전기대비 2.9%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한 우리 경제의 회복 속도가 앞으로는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원화가치와 국제유가, 금리가 모두 오르는 이른바 `신3고` 조짐마저 나타나면서 `더블딥`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 더블딥이 뭐길래?..수요 부진이 불황 초래

`더블딥(double dip)`은 사전적으로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경우 경기침체로 규정하는데, 더블딥은 이러한 침체가 두 번 계속된다는 뜻이다. 즉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끝나고 잠시 회복 기미를 보이는 듯하던 경기가 다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하는 상황을 말한다.

▲ 일본 설비투자 및 실업률 추이(출처: 삼성경제연구소)
원인은 주로 `수요`에 있다. 불황에 맞서 재고를 대폭 줄였던 기업들이 빈 창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면 일시적으로 경기가 반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 침체기의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제로는 불필요한 재화와 용역의 공급만 늘려놓게 되며, 결국 경기가 다시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실제 우리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더블딥 우려가 가중되고 있는 일본의 경우 투자가 부진한데다 실업률이 5%대를 기록하는 등 전후 최악의 고용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수요` 측면의 문제는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 물가를 동시에 끌어내려 디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예산 소진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효과마저 악화되면서 더블딥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 전문가들도 우리 경제 `더블딥 속 침체` 우려

우리의 상황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국내 경제전문가들의 경기 인식에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경련이 최근 국내 18개 민간 및 국책 경제경영 연구기관 대표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내년 우리 경제의 최대 복병으로 `더블딥 속 경기침체`를, 역점을 둬야할 경제정책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진정한 위기 극복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동성 축소, 금리 상승 등이 진행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최근 `2010 금융리스크 분석`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 금융시장의 대외적 위험요인으로 가장 먼저 `세계경제의 회복 지연 또는 더블딥 가능성`을 꼽았다. `복병` 더블딥에 대한 우려가 일부 비관론자들만의 과도한 노파심만은 아닌 셈이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내수보다는 수출을 통해 버텨왔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9월 한국 경제에 대해 “재정 및 통화정책이 경제 안정에 도움을 줬다”면서 “수입감소율이 수출감소율을 앞선데다, 원화가치마저 평가절하되면서 무역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것이 한국경제 성장의 중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내년 재정정책의 효과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과 원화가치 절상,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유럽의 더딘 경기회복으로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둔화되는 경우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가 늦춰지거나 오히려 후퇴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무역비중)는 지난해 92%로 올랐고, 수출의존도는 45%를 넘었다. 세계경제의 불안요소가 우리 수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 `내우외환 잠재`..美 상업모기지 부실, 韓 가계부채증가 등 불안

세계 경제로 눈을 돌려보면 더블딥에 대한 우려는 한층 심화된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의 경우 상업용 빌딩 대출부실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소형은행 파산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와 투자 역시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동구권의 재정 불건전성 문제도 얼마 전 두바이 모라토리엄 선언과 같은 잠재적 불안요소다. EU 경제는 내수회복이 지연되고 있는데다 수출 환경이 악화되면서 성장세가 1%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그나마 고성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신흥국들의 소비가 선진국 시장을 대체하기까진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수준(출처: LG경제연구원)

우리 내부도 큰 잠재위험을 안고 있다. 연초로 예상되는 금리 인상이 가계부실을 촉발해 더블딥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2009년 3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713조원으로 9년 전인 2000년말 226조원에 비해 445조원, 3.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은 603조원에서 1000조원 남짓으로 1.7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가계의 채무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로 따지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가 터진 미국보다도 안좋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오르게 되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증가하면서 서민층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IMF에 따르면 금리가 1~3%포인트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의 가계부실비율은 8.5~17%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민간수요 회복,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

물론 아직까진 조심스런 관측이 필요하다. 더블딥 가능성은 섣불리 판단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블딥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는 이도 상당수다.

내년 우리 경제가 5.5% 성장할 것이란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현오석 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2010년 성장률 전망치는 결코 낙관적인 수치가 아니며 2009년이 워낙 낮았던데 따른 것”이라며 “일부 학자들이 더블딥을 우려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확률상 20% 정도로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우리 경제의 더블딥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은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주요 교역대상국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이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나타낼 전망"이라며 "고용과 임금의 회복, 금융시장 안정 등에 힘입어 소비·투자 등 내수가 양호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가능케 할 민간의 수요 회복과 이것과 서로 맞물려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 예상대로 우리 경제가 올해 0.2%, 내년 5% 성장한다고 봤을 때 연평균으로는 2.6%의 성장률에 불과하다. 민간 부문의 체감경기는 마이너스 상태가 지속된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더블딥의 현실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민간의 수요 회복을 가능케 할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은 필수 과제다. 
 
`시골의사`로 알려진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는 “중요한 것은 서울대에 몇 명이 가느냐가 아니라 졸업한 학생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됐느냐”라면서 “GDP 성장 같은 거시지표만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지만 나는 대학교 떨어졌는데 우리 학교에서 서울대 50명 갔다고 박수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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