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7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은 제1왕조 6대왕인 함무라비왕(BC1728~1686)의 통치하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함무라비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로 유명한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을 반포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무역을 장려하는 등 내치에도 힘써 바빌론을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 번영하게 하였다.
총 282조로 구성된 함부라비 법전에는 맥주에 관한 조항이 4개나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맥주는 매우 대중적인 음료였고, 곳곳에 오늘날과 거의 같은 맥주집이 성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함부라비 법전의 행간에 좇아 3700년전 바빌로니아 왕국의 맥주홀로 들어가보자.
바빌로니아 왕국의 성안 마을,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맥주집으로 모여든다. 마을어귀에는 멀리서도 잘 볼 수 있는 커다란 입간판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맥주홀 안은 오늘날의 나이트 클럽처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무대 위에는 토플리스의 아름다운 무희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맥주집은 여성이 운영했고, 여자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주집은 엄연히 유흥과 향락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수도원에 거주하지 않는 여승이나 사제가 맥주를 마시러 주점에 들어가면 화형에 처했다.
맥주집에서는 20여종의 맥주를 판매했다. 8종은 순수한 밀로 만들었고, 다른 8종은 보리로 만들었으며, 나머지 4종은 곡식 혼합물로 주조했다. 당시의 맥주는 여과를 시키지 않아 탁했고, 찌꺼기가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빨대를 사용해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돈으로 팔고 사지 않고 곡물로 값을 치루었다. 맥주값을 당장에 현물을 치룰 수 없는 사람은 외상으로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외상값은 가을 추수 때 정산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만약에 맥주집 주인이 용량을 적게 하거나 물을 타서 묽게한 맥주를 판매하면 물 속에 던져 익사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보니 맥주홀은 범죄가 모의되고 범죄인이 숨어드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범죄 모의를 방조하거나 범죄인을 맥주홀에 숨기고 신고하지 않으면 그 주인은 사형에 처했다.
함무라비 법전속의 맥주홀은 길고 긴 맥주의 역사와 함께 고대들의 맥주 사랑을 함께 보여준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고독을 달래주고 즐거움을 키워주었던 맥주가 지금은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 도움말 : 한국창업개발연구원 장승희 전략기획팀장 (02)501-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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