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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에이블테라퓨틱스 대표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최근 이데일리 제약·바이오 프리미엄 콘텐츠 팜이데일리와 만나 노트북으로 같은 문장을 말한 두 개의 음성 파일을 차례로 재생했다. 하나는 원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음성에 섞인 미세한 떨림을 임의로 제거한 파일이었다. 몇 차례 반복해서 들어봤지만, 귀로는 뚜렷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음성을 주파수 형태의 이미지로 바꾼 화면에서는 두 파일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사람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발화 특성도 인공지능(AI)은 데이터로 구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에이블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스픽’(SPICK)은 이처럼 사람이 구분하기 어려운 발화 특성을 AI로 분석해 인지기능 저하 위험을 평가하는 디지털 인지평가 플랫폼이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예방과 조기 선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검사만으로는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도인지장애(MCI)를 조기에 가려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치매역학조사·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은 치매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MCI) 상태며,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에이블테라퓨틱스의 스픽은 음성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지류 기반 인지검사를 보완하고, 의료진이 검사 결과를 병력과 기존 인지검사, 영상·혈액검사 등 다른 임상정보와 종합해 후속 정밀검사 필요성을 판단하도록 돕는 인지기능 저하 선별·진단보조 도구다.
스픽은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3등급 디지털의료기기 제조허가를 받았다. 인지 기능을 평가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는 국내 첫 허가다. 회사는 제도와 병원 내부 절차를 마친 후, 10월부터 병원용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회사는 정상인과 MCI, 치매 환자로부터 확보한 약 1만2500개의 음성 파일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다”며 “사용자의 음성이 입력되면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정상군과 환자군의 발화 패턴을 바탕으로 인지저하 위험도를 산출한다”고 말했다.
IT 사업가가 인지 헬스케어에 뛰어든 이유
김 대표가 처음부터 의료 분야에 몸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25년 이상 정보기술(IT)과 신규 사업을 담당해 온 사업가다. 대기업 신규사업 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해 2013년에는 IT 회사를 창업했고, 기업용 메시징과 시스템 개발, 비콘 등 여러 기술 사업을 직접 사업화했다.
다만 기존 IT 시장만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2017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AI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모교 대학원에서 관련 공부도 시작했다.
인지기능 평가를 첫 사업으로 선택한 데에는 시장성뿐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의식이 작용했다. 김 대표는 “회사원 시절 노인복지관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지기능이 크게 저하된 독거노인과 고령의 배우자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정을 봤다”며 “그때부터 병원이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인지 상태의 이상 신호를 더 일찍 발견할 방법이 없을지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알츠하이머병 관련 연구를 살펴보다 말이 느려지고 머뭇거리거나 단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변화가 음성에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음성은 스마트폰만으로도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과 확장성이 높고, 조기 선별에 적합한 디지털 바이오마커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기술만으로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이에 김우준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와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임준식 가천대 명예교수 등과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2021년 에이블테라퓨틱스를 공동 창업했다.
김 대표는 “의료진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검사 과제와 진단 기준을 설계하고, AI 연구진은 알고리즘과 데이터 체계를 구축하고, 저는 제품화와 사업화를 담당했다”며 “디지털 의료기기는 의학과 AI, 사용자 경험, 사업화 중 어느 하나만으로 완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학제 공동창업 구조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답 아닌 ‘말하는 방식’ 분석…MCI 선별 초점
스픽은 다양한 채널에 맞게 △의료기기 버전(11문항·15분) △비의료용 헬스케어 버전(8문항·10분) △전화 기반 AI콜 버전(4문항·5분)으로 구분해 서비스하고 있다.
제품의 특징은 사람이 청취만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음성 특성을 종합해 인지저하 위험도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스픽은 정답 여부를 채점하는 방식이 아니다.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발화 속도, 휴지, 머뭇거림, 떨림 등 ‘어떻게 말하는가’에 나타나는 음성 패턴을 분석한다”며 “음성을 멜스펙트로그램 이미지로 변환해 AI가 패턴을 판별하기 때문에 검사자의 숙련도에 따른 편차를 줄이고, 결과를 바로 수치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별점을 바탕으로 8개 대학병원에서 정상군과 MCI·알츠하이머병 환자 3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확증임상시험에서 스픽의 MCI 선별 민감도는 79.6%, 특이도는 74.3%, 분류 성능을 나타내는 ROC 곡선하면적(AUC)은 0.80을 기록했다. 회사는 이를 통해 기존 지류 기반 인지검사를 보완하는 음성 기반 선별도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국내에서 음성 기반 인지평가 소프트웨어의 선례가 거의 없었던 만큼, 스픽의 성능을 임상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사용 목적과 대상 환자, 임상 기준, 평가지표를 규제기관 기준에 맞추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10월 병원 서비스 진입…멀티모달·해외 확장 목표
에이블테라퓨틱스는 현재 병원용 스픽의 비급여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10월경부터 병원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초기에는 병원 수를 빠르게 늘리는 것보다 실제 진료 흐름 안에서 검사 시행률과 반복 사용률을 확인하고, 의료진이 신뢰할 수 있는 실사용 데이터(RWE)를 쌓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밖에서는 비의료용 헬스케어 버전의 상용화도 진행하고 있다. 태블릿 기반 헬스케어 버전은 2024년부터 데이케어센터와 재가노인보호센터 등에 공급돼 고령자의 일상적인 인지건강 관리에 활용되고 있다.
전화로 간단한 말하기 과제를 수행하는 AI콜 버전은 지난해부터 부천시의 의료취약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인지건강 관리 서비스에 적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병원용 의료기기가 인지기능 저하 위험군의 선별과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한다면, 헬스케어 버전은 병원 밖에서도 고령자가 자신의 인지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에이블테라퓨틱스는 병원용 스픽의 본격적인 상용화와 기본 헬스케어 사업 확대를 바탕으로 올해 약 4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김 대표는 에이블테라퓨틱스를 단순한 음성 검사 기업이 아닌 ‘인지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장기 목표로는 △알고리즘 성능 고도화 △파이프라인 확장 △해외 버전 개발 등을 제시했다.
에이블테라퓨틱스는 현재 해외 버전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먼저 대만 현지 의료진과 표준중국어용 과제를 개발해 331명 규모의 1차 임상연구를 마쳤다. 김 대표는 “해외 현지화는 한국어를 번역해 그대로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핵심 음향 분석 구조는 공유할 수 있지만 기억·언어 과제는 문화와 교육 배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지 전문가와 과제 세트를 다시 설계하고 정상군과 환자 데이터를 확보해 성능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