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 AI신약개발 외주에서 자체개발 체제로...왜
일라이릴리는 최근 1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한 자체 AI 플랫폼 ‘튠랩(TuneLab)’을 공개했다. 앞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이 미국 AI 신약개발 스타트업들과의 협력을 종료하고 자체 플랫폼 개발을 선언한 데 이어 지속적인 자체 개발 사례다.
일라이릴리의 튠랩은 수십만 개의 고유 분자로 구성된 실험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선별된 바이오테크 파트너들은 플랫폼 접근 대가로 AI 플랫폼을 강화할 수 있는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다. 현재 서클파마(Circle Pharma)와 인시트로(insitro)가 튜널랩을 활용해 각각 항암제와 저분자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화이자도 자체 AI 플랫폼 ‘복스(VOX)’를 19개 이상의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적용해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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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제약·바이오 기업의 AI 기술 투자가 매출 대비 최대 11%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일부 기업은 AI 도입으로 향후 2~3년 내 총매출의 최대 12%까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빅파마들의 자체 플랫폼 전환은 AI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에게는 위기 신호다. 2021년 벤처캐피털 투자가 18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는 20건 미만의 거래로 투자액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AI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이 연이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AI신약개발 기업인 베네볼런트AI가 2024년 12월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3월 유로넥스트 암스테르담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개인 유전정보 분석 서비스의 시초인 23andMe도 최근 파산 보호를 신청했으며, 2024년 11월에는 신약개발 부서를 폐쇄하고 200명을 해고했다. 의료 자동화 분야 유니콘이었던 올리브 AI(Olive AI)도 83억 달러를 투자받았음에도 2023년 10월 운영을 중단했다.
AI 스타트업의 90% 이상이 실패하는 이유는 시장 적합성 부족, 수익화 실패, 과도한 기대, 빅테크와의 경쟁 등이 주요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MIT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생성형 AI 파일럿 프로젝트 중 95%가 매출 가속화에 실패했으며, 미국 인구조사청 조사에서는 대기업의 AI 도입률이 올해 초 14%에서 8월 12%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탈(VC)업계 한 관계자는 “빅파마들이 스타트업과 협력 단계에서 자체 AI신약개발 플랫폼 체제로 전환하는 추세인 것은 맞다”며 “이번 일라이릴리의 사례는 거대 자금을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얻은 노하우로 결국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는 수순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준 명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AI신약개발 시장 상황은
이런 흐름속에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은 이미 자체 플랫폼 체제로 전환했다. 국내에서는 JW중외제약(001060)과 SK바이오팜(326030)이 자체 AI 플랫폼 구축에 가장 적극적이다. JW중외제약은 AI 기반 신약 R&D 통합 플랫폼 ‘제이웨이브(J-Wave)’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2010년부터 구축해온 빅데이터 기반 약물 탐색 시스템 ‘주얼리’와 ‘클로버’를 통합해 AI 모델 적용 범위를 대폭 확장한 것이다.
제이웨이브는 JW중외제약이 보유한 500여 종의 세포주, 오가노이드, 각종 질환 동물모델의 유전체 정보와 4만여 개의 합성 화합물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특히 주얼리를 통해 신호전달경로를 활성화해 모낭 증식과 모발 재생을 촉진하는 혁신신약 후보물질 ‘JW0061’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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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연구부문 내 전략&DT본부에 ‘AI/DT추진 TF팀’을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IT 인력을 충원하며 조직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허블 플랫폼의 활용 범위도 유전자·단백질 분석, 후보물질 발굴 등 초기 단계에서 임상시험계획(IND) 등 본임상 진행 업무까지 확장하고 있다.
대웅제약도 2021년 업계 최초로 AI 전담팀을 신설해 8억 종 이상의 화합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DAISY)’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대웅제약이 지난 40여 년간 신약연구를 통해 확보한 화합물질과 현재 신약개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화합물질을 결합한 것으로, 향후 전임상부터 임상, 시판까지 신약개발 전주기에 활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국내 제약사들은 여전히 외부 AI 기업과의 파트너십으로 신약을 개발 중이다. 유한양행은 2018년부터 신테카바이오와 협력을 시작해 온코마스터, 휴레이포지티브와 공동연구 협력계약을 체결했으며, 한미약품은 아이젠사이언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항암 분야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나서고 있다. 보령제약은 온코크로스와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의 신규 적응증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동아에스티는 심플렉스와 CNS 질환 신약개발을 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 대비하면 격차가 여전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AI 플랫폼으로 발굴해 임상시험에 진입한 국내 신약 후보물질은 10개 남짓에 불과하며, 대부분 1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AI 신약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별도의 전담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AI 신약개발 전문가는 “대부분의 전통 제약사에서는 AI 분야에 특화된 내부 팀이 없고 AI 업체와 공동연구 협약 또는 계약을 맺고 외주를 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별도의 조직 없이는 신약개발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자체 AI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보다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에서 2029년까지 총 495억원을 투입하는 ‘K-AI 전임상 모델개발’ 사업을 시작했는데 해당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