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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증오한 청년의 악행...“말 할 수 있어?” 묻고 칼 휘둘렀다
공판을 통해 밝혀진 우에마쓰의 범죄 행각은 매우 잔인하고 처참했다. 우에마쓰는 스포츠 가방에 부엌칼 여러 개와 망치, 테이프, 케이블 타이 등을 넣고 쓰구이야유리엔 부지 뒷문으로 몰래 침입, 준비한 망치로 1층 유리창을 깨고 건물 내로 들어왔다. 그는 야근을 하고 있던 직원을 흉기로 위협해 묶어두고 그를 데리고 다니며 ‘말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을 찾아다녔다. 우에마쓰는 방 앞에서 직원에 “이 사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직원이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곧바로 흉기를 휘둘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후 태연하게 다음 방으로 이동한 우에마쓰는 또다시 직원에 “이 사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에마쓰의 살해 의도를 눈치챈 직원이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 모두 말할 수 있다”고 하자, 우에마쓰는 직접 피해자에 다가가 그가 중증 장애인인지 확인하고 죽이는 것을 반복했다. 패닉에 빠진 직원이 “그만 하라,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오열하자 우에마쓰는 “귀찮다”며 직원의 입을 테이프로 막고 그를 난간에 묶어두고 떠났다. 우에마쓰는 시설 다른 동에서도 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준비한 흉기 날이 무뎌지면 버리고 다른 흉기를 꺼내 들어 범행을 이어갔다.
피해자들은 3분의 1 이상이 ‘저항흔’을 남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살당했다. 사망한 이는 40~60대 남성 9명, 10~70대 여성 10명이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9세로, 복부를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일부는 목뼈가 다칠 정도로 깊은 자상을 입었다.
시설 직원들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 우에마쓰에 끌려다닌 직원은 “지금도 눈물이 갑자기 나오거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하겠다”며 “입소자를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스스로 비난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범행 후 우에마쓰는 자신의 SNS에 “세계가 평화로워지기를! 뷰티풀 재팬!”이라는 글을 올려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호송될 당시 몰려든 취재진에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활짝 웃는 섬뜩한 모습까지 보였다.
◇ 인사성 바른 청년은 왜 집단살해범이 되었나
우에마쓰는 평소 주변에 ‘인사성 바른 청년’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좋은 평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고,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교직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다. 그의 잔혹한 범행이 알려지자 주변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재판 과정에서 우에마쓰가 장애인을 향한 비정상적인 분노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우에마쓰는 재판정에서 “나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인간은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을 향한 분노가 언제 싹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에마쓰는 교사의 꿈이 좌절된 후 2012년 12월 쓰구이야유리엔에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 이듬해 4월 그는 시설 정규직 직원이 됐지만 3년 후인 2016년 2월 퇴직했다.
그 해 2월 14일에는 도쿄의 중의원 의장 공관으로 찾아가 편지를 전달했는데, 장애인의 안락사를 주장하거나 쓰구이야유리엔의 장애인 470명을 말살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2월 18일에는 동료 직원에 “중증 장애인은 살아도 소용 없다. 안락사 시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에 동료 직원은 우에마쓰를 경찰에 신고했고, 대마초 양성 반응과 망상장애 증상으로 강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비뚤어진 증오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우에마쓰는 지난 2020년 3월 16일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의 변호인은 대마초 복용 등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우에마쓰가 범행 과정에서 침착하게 ‘장애인’만 골라 살해한 점 등을 들어 그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우에마쓰는 끝까지 “내가 죽인 것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살해행위는)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유지해 그를 용서하려던 유족들도 법원에 사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우에마쓰는 항소를 하지 않아 그대로 사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