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복마전에 가까운 내부 실태가 드러났다. 지난해 3월 김세환 전 사무총장(장관급)이 자녀 특혜채용으로 물러난 지 14개월 만에 이번엔 사무처 1, 2인자가 같은 이유로 동반사퇴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전·현직 고위 간부의 자녀 경력 채용만 6건이다. 모두 지방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자녀를 선관위 경력직에 채용하는 방식이었고 이 중 5건은 임용 후 초고속 승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고용 세습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짙다. 헌법상 독립기구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선관위의 일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무능과 무책임, 정치적 편향이 도를 넘었다. 20대 총선 사전투표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선거관리의 신뢰성에 스스로 먹칠을 했고 최근엔 북한의 사이버 공격으로 선거인 명부 유출, 투개표 조작 시스템 마비의 위험이 노출됐지만 관련 해킹 사실조차 인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공정과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조직에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 들어와 정권 입맛에 따라 선거 업무를 농단한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선관위 상임위원에 민주당 대선캠프 특보출신 조해주를 임명했고 2021년 1월 유례없는 재임용까지 시도하다 내부 반발로 물러섰다. 여기에 노정희·노태악 전· 현직 위원장 모두 친민주당 성향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물들이고 선관위원 구성도 8명 중 6명이 문 정부와 김 대법원장이 추천한 인사들이다. 그동안의 각종 선거 관련 논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선관위는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방대한 조직과 선거사무에 관해선 수사기관에 준하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의 수장을 대법관들이 명예직처럼 맡으면서 조직관리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극심한 관료주의와 폐쇄적 조직운영으로 자정능력도 상실했다. 이번 고위직 고용세습사태도 꼬리자르기 사퇴와 자체 조사로 뭉개려는 분위기다. 수사당국이 철저한 수사로 관련자를 일벌백계할 일이다. 비대한 업무와 권한에 대한 대수술은 물론 정치적 중립을 위한 외부 견제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노 위원장의 사퇴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