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과에 호피문양을 입혔다고 할까, 호피를 사과모양으로 잘랐다고 할까. 둘 중 뭐가 됐든 손을 대면 온기가 전해질 듯, 살아있는 호랑이털처럼 생생하다. 보통 그림에 호피가 등장할 땐 두 테마 중 하나다. ‘인간의 욕망’ 혹은 ‘동물의 절망’.
작가 정해진(45)은 그 양쪽을 교묘히 오가는 데다가 배경을 떠나 감상을 격을 높이는 순수작품으로서도 성과를 내왔다. ‘레오파드 애플 골드’(Leopard Apple Gold-03·2021)의 태생이 사과든 호피든 상관없이 말이다.
작가는 서양명화를 전통기법으로 다시 그린 패러디화로 이름을 알렸다. 조선 궁중화가들이 채색화에 썼다는 강렬한 색감의 ‘진채법’을 무기로. 그 안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한국화를 걸어두거나 샤넬백을 슬쩍 올려두고 CCTV를 설치하는 등 ‘독보적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진정한 한 수는 따로 있으니 바로 ‘호피무늬’다. 그림 속 어딘가에 기어이 호피를 들여 서명처럼 활용하는 거다. ‘레오파드 애플’ 연작은 그중 가장 적극적인 형태. “동물-식물, 선-악, 통합-분열 등 상반되고 이중적 생각들이 얽힌 매듭의 지점을 보여주려 고안했다”고 했다.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손우정과 여는 2인전 ‘호! 호랑! 호랑이!’에서 볼 수 있다. 비단에 천연색소·금박. 50×50㎝. 작가 소장.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