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동안 4만명 초현실 발길…'달리'가 달리 달리가 아니더라

오현주 기자I 2021.12.21 03:30:00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 회고전''
스페인·미국 세계3대 달리미술관서 공수한
유화·삽화 등 140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기괴하고 비합리적 환각, 사실적으로 표현
코로나 확산 현실 뛰어넘은 관람객 북새통
동시입장 제한에도 주말 2천명 둘러보기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살바도르 달리 회고전’에 나온 달리의 대표작 ‘슈거 스핑크스’(1933)를 관람객들이 둘러서서 감상하고 있다. 밀레의 ‘만종’에서 느꼈다는 불안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작품이다. 유화·삽화 등 100여점의 원화를 건 전시에는 연일 관람객들이 몰려 또 다른 ‘초현실주의’를 연출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시계. 납작하게 눌린 베이컨 덩어리처럼 나뭇가지에 척 걸쳐 있는 그 시계. 대개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 사내를 떠올리는 일 말이다.

‘기억의 지속’(1931)이란 그림은 우연찮게 나왔다고 했다. 두통에 시달리느라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한 극장에 아내만 보내고 혼자 집에 남았을 때였단다. 그즈음 풍경화에 넣을 오브제로 고민하던 그에게 갑자기 흘러내리는 시계가 보였다는 건데.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한 뒤, 귀가한 아내에게 그림을 보였다고 했다. 과연 반응은 어땠을까. 감탄에 또 감탄, 그 남편에 그 아내인지. 극장에서 뭘 보고 왔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빠져들었다니 말이다.

1940년대 2차대전 후 미국으로 망명한 시기, 아뜰리에에서 작업하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 이 시기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낸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이번 ‘회고전’에도 나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세상을 살아낸 인물, 아니 그 세상을 찾고 내보였던 인물. 기인이라 할까, 천재라고 할까. 사실 기인·천재로 불리던 이들의 당황스러운 행각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달리의 문제는 기행 그 자체에 있진 않았다. “내가 천재”라고 대놓고 떠들고 다닌 데 있었으니.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나는 위대한 천재가 될 거고, 그것만은 확실하다.” 단단한 자신감인지 비뚤어진 오만함인지, 그 광경이 세인의 눈에 그리 유쾌할 리 없었겠지만. 뭐 어쩌겠나. 그가 천재였던 건 사실인데.

스페인이 낳은 ‘20세기 대표화가’로 꼽는 데 주저할 수 없는 달리가 ‘초현실주의 세상’을 이끌고 국내에 상륙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살바도르 달리’ 전이다. 유화·삽화·설치·영상·사진 등 140여점을 걸고 이제껏 국내에 없던 규모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작품이다.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얼굴 일부를 분리해 표현한 것은 핵 분열 상태에서 허공에 떠다니는 다양한 물질을 강조한 것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개막한 지 이제 3주 남짓. 놀랄 일이다. 달리가 평정한 서울 전시장에 진정한 초현실주의가 펼쳐지고 있으니 얘기다. 전시내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시장에 줄지어 입장하는 인파를 말하는 거다. 그 줄은 안으로 길게 이어져 ‘한 사람씩 차례로’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는, 과거 어느 한때의 ‘블록버스터 전시장’을 떠올리게 하는데.

평일 오후의 이 풍경. ‘현실을 넘어선, 극복한’ 등이 초현실주의의 정의에 낄 수 있다면, 저 긴 줄 만한 초현실주의도 없겠다 싶은 거다. 코로나19란 현실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전시 한 관계자는 “3주 동안 4만명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동시입장 499명으로 인원제한 중인데도 주말 어느 하루는 2000명이 둘러보기도 했다니, 그 흐물거리는 시계만큼 늘어난 줄이 이해가 되는 거다. 도대체 무엇이 이 긴 줄을 세우고 있나.

미국 살바도르달리미술관이 제작한 영상 ‘달리의 꿈’(2016) 중 한 장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중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1935)을 중심으로, 달리의 다양한 상징물을 재해석했다. 마치 달리의 초현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혼돈스러운 오브제에 들이댄 정교한 선·점·면·색

‘진짜 원작인가’에 대한 의문은 전시를 주최한 ‘살바도르 달리 재단’이 풀어줬다. 10대 소년부터 70대 노장까지, 달리가 제작한 유화·삽화 100여점을 앞세운 전시작은 스페인 달리미술관과 레이나소피아국립미술관, 미국 살바도르달리미술관 등 세계 3대 달리미술관에서 공수해온 소장품이란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등, 달리와 만난 또 다른 천재와의 접점으로, 젊은 세대가 소통할 지점을 만들어놨지만 전시는 어찌됐든 본격적인 회고전이다. 열다섯 살에 그렸다는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1919)부터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마지막 장면 틈틈이 자신만의 이미지와 색을 박아넣은 ‘지질학적 메아리,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재해석’(1982)까지. 전시는 달리의 여정을 따라 움직이는 연대기적 형식을 충실히 밟아나간다.

살바도르 달리의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1931). 알 수 없는 형태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풍경은 아내 갈라가 갑작스러운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 달리가 느낀 우울·불안을 반영한다. 달리의 문제작 흐느적거리는 시계를 그렸던 ‘기억의 지속’과 같은 해에 그린 작품이다(사진=GNC미디어).


그 사이의 묘미라면 달리만의 상징을 심어낸 독특한 작품세계를 좇는 데 있다.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사실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이 달리의 창작기법. 개미, 신발, 사이프러스나무, 시계, 모래폭풍 등, 뜻밖의 장소에서 엉뚱하게 튀어나오는 오브제로 점철된 진기한 세상구경 말이다. 혼돈이나 혼란이 연상되는 장면에 어느 하나 비뚤어지지 않은 선·점·면·색 또한 달리의 정신세계만큼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최고조의 심란한 무의식을 최고조의 극사실주의기법으로 묘사한 건데. 이상하지만 난삽하진 않은, 낯설지만 지저분하진 않은, 진짜 그들만의 세계가 그러한 듯 작품은 깔끔하기만 하다. 마치 달리의 삐친 콧수염 위로 잘 빗질해 넘긴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보는 듯하달까.

새로운 기회를 찾아 건너간 미국에서의 작업에선 증폭한 광기가 절정에 달한 듯하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이는 ‘이중 형상’을 기가 막히게 끌어다 쓴 ‘사라지는 볼테르의 흉상’(1941),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 서사의 끝판왕을 내보인 듯한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 등으로 그만의 환상은 정점을 올라타고야 만다.

살바도르 달리의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 이즈음 달리의 작품 중 가장 복잡한 서사를 드러내고 있다. 3주 동안 하루에 2시간씩 작업해 완성했다는데, 본을 떠 내려놓은 듯한 나폴레옹의 두 얼굴은 어린 시절 영웅이었다는 나폴레옹에 대한 달리의 집착을 드러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꿈속에서도 꿈 밖에서도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아내 갈라(1894∼1982)와의 흔적은 전시장 전체에 맴돈다. 갈라는 평생 달리의 뮤즈로 그의 작업을 자극했다는데, 작품 사인 중 ‘갈라 살바도르 달리’로 기입한 게 적잖은 이유다. 아내의 기여를 새겨두겠다는 의미다. 한 예로 밀레의 ‘만종’을 초현실주의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슈거 스핑크스’(1933)가 있다. 그림 속에 등 돌리고 앉아 모래폭풍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갈라다. 그렇다면 ‘만종’은 왜? ‘만종’ 속 감자바구니가 관으로 보여 늘 불안했다는 건데. 그 심리를 아내로 치유했다 할까.

이번 전시에 문제작 ‘기억의 지속’은 오지 못했다. 그 아쉬움은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1931)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시간의 속도’(1931)에 든 시계, ‘무제: 맑은 날씨의 지속’(1932)에 올린 하늘색 등으로 대신 위로받을 수 있다.

1951년 살바도르 달리와 아내 갈라. 8년간 미국생활을 접고 고향 스페인 포트이가트로 돌아간 두 사람이 달리의 작업실인 ‘포트이가트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림이란 비합리적인 상상력이 만든 천연색 사진”이라 “익숙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다른 점은 나 자신이 바로 초현실이라는 거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그를 꿈의 세계로 인도했다지만, 달리는 자신이 태어나기 직전에 사망했다는 형의 이름을 쓰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야 했다. 달리가 가 있는 무의식세계가 거기서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잖은 까닭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하루에 2시간만 활동하고 나머지 22시간은 꿈속에서 보내겠다” 했던 것도 그 때문인가. 그럼에도 달리는 피카소처럼 최고의 그림값을 받으며 꿈 밖에서도 잘 살았던 듯하다.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선 전시장 밖으로 나와보니 말이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살바도르 달리 회고전’을 찾은 관람객들. 유화·삽화 등 100여점의 원화를 건 전시에는 연일 관람객들이 몰려 또 다른 ‘초현실주의’를 연출하고 있다. 오른쪽에 달리의 초기작 ‘두 인물’(1926)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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