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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붉게 물들다 못해 타들어가는 가을 숲 위에 우뚝 선 고성. 여행을 못 가 온몸이 욱신거리는 이들에게 독이 될지 꿀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작가 박능생(48·국립창원대 한국화과 교수)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붓질만 이어간다.
도시여행에서 모티프를 얻는 작가의 ‘스페인-그라나다’(Spain-Granada·2021) 역시 언젠가 눈과 마음이 붙들렸을 장면이다. 분명 처음 찾은 장소일 텐데, 그런 낯섦쯤은 고민거리도 안 될 만큼 작가의 작품은 친밀하다. 늘 점점이 박아둔 여행객을 따라 줄기차게 시선을 돌려대게 만드는 거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끊임없이 고안해온 작업방식에 있을 거다. 지·필·묵에서 시작해, 토분을 쓰고, 색을 들이고, 갈필에 점을 찍고, 나뭇가지를 이용했다가, 캔버스천의 거친 질감을 끌어내는 등. “장소를 체험한 모든 감각을 육화해 나가는 것이 나의 장소 표현방법”이라고 했다.
결국 작가의 장소성은 그의 몸이 겪은 장소성이란 얘기다. 그러니 서걱거릴 리가 있나. 그저 ‘나도 가본 듯한 절경’이 나올 수밖에.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서 권인경·김정란·박영길과 여는 4인전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또 다른 계절’에서 볼 수 있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키우는 작가들의 30여점을 걸었다. 종이에 먹·아크릴물감·클레이. 93×64㎝. 작가 소장. 장은선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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