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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원체 그런 생각을 했던 작가였다. 사는 일에 치여 제 몸보다 몇십배는 더 나갈 덩어리를 짊어지고 사는 현대인, 그들을 표현하자. 차라리 눈앞에 보이면 위로가 되지 않겠나. 내 덩어리뿐만 아니라 남의 덩어리도 보일 테니.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을 거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즈음 눈에 띈 게 ‘제 살 다 깎인 나무’였나 보다. 계기도 있었다. 전북 진안 고향마을이 수몰되면서 “어쩔 수 없이 삶의 터를 옮길 수밖에 없는 실향민의 아픔”이 보였던 거다.
작가 송필(51)이 앙상한 나목, 죽은 나무껍질을 가져다가 다듬어낸, 보기만 해도 먹먹한 조각작품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비관론 일색은 아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할 ‘기적’을 심어 희망을 북돋운 거다. ‘레퓨지아-움트다Ⅰ’(2021)이 그중 한 점이다. 바짝 마른 나무껍질에 새순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를 피워냈다. 날이 어두워지면 더 화려해지는 자태는 덤. 매화에 입힌 야광안료 덕이다.
‘고사목에 핀 매화’ 연작을 위해 작가는 오늘도 산을 헤맨단다. 억겁이 내려앉은 그들 마른 몸에 ‘살’을, ‘삶’을 찾아주려고.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서 여는 기획초대전 ‘말라죽은 혹은 시든, 저 너머’(Beyond the Withered)에서 볼 수 있다. 브론즈·스테인리스에 야광안료. 30×290×79㎝. 작가 소장.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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