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닮은 꼴 트럼프…그러나 그에겐 그린스펀이 없다

방성훈 기자I 2018.12.30 00:30:00

그린스펀 같은 보조 기대했지만…연이은 금리인상으로 '파열음'
트럼프 "경제성장·고용호조에 연준이 최대 걸림돌" 주장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롤 모델로 알려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은 물론 ‘아웃사이더’ 정치인으로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 일자리 창출·규제완화·세금인하 등 경제 정책까지 꼭 닮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겐 앨런 그린스펀과 같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없다. 그린스펀이 이끄는 연준을 존중하고 연준의 결정에 신뢰를 보냈던 레이건 전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트럼프-그린스펀 임기내 동반자 관계 유지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7년 8월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린스펀이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뒤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3% 폭락하는, 이른바 ‘검은 월요일(1987년 10월 19일)’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규제완화 및 세금인하 등을 통해 물가와 실업률을 낮추겠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레이거노믹스)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재정적자 우려를 대폭 키웠기 때문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나는 처음에는 14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플레이션을 없애고, 금리를 낮추고,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주식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경제정책 때문이란 것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시장은 어제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다. 연준이 취한 금리인하 조치에 만족하고 있다”며 그린스펀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린스펀은 위기가 도래하자 즉각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늘려 대응했다. 덕분에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향후 18년 동안 연준 의장 자리에 머무르며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한 주요 계기가 된다.

규제완화에 반대하며 레이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전임 폴 볼커 의장과는 대조적으로 그린스펀은 규제완화와 세금감면을 옹호하는 시장주의자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치는 레이건 전 대통령과는 손발이 잘 맞았다.

◇ 트럼프-파월 파열음 심각

트럼프 대통령도 민주당원인 재닛 옐런 전 의장의 연임을 좌절시키고 후임으로 공화당원인 파월 의장을 앉혔다. 자신의 정책에 동조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레이건-그린스펀과는 상이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연준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어서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정상적(제로 금리)으로 운용됐던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인상을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생기는 등 한창 경기가 좋을 때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취임한 지 불과 열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금리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노골적으로 금리동결을 촉구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고용 호조에 연준이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트럼프와 파월의 불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측근들이 부인하기는 했지만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또다시 금리를 올리자 이에 격분한 트럼프가 파월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실 연준에 금리인하(또는 동결)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은 성향에 따라 연준 금리정책에 대한 대응이 달랐다.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공개 연설에서 금리인하를 촉구한 적이 있다.

반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달랐다. 연준은 클린턴 전 행정부 시절 한 번에 0.5%포인트, 0.75%포인트 금리를 인상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그는 1997년 10월 아시아 통화위기로 다우지수가 554포인트 급락했을 때에도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시장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적절치도 않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 (사진=위키피디아)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사진=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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