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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異야기]국내제약업 성장의 숨은 1등공신 에스텍파마

천승현 기자I 2015.08.26 02:55:00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
"원없이 연구하고 싶어 원료의약품 업체 설립"
"남들이 만들지 않은 원료 개발해 국내외 업체에 공급"
"신약, 바이오의약품 원료 사업에도 도전"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국내 제약산업은 우스갯소리로 ‘복제왕국’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복제약(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비판하는 별칭이다. 국내제약사들은 다국적제약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만료를 기다렸다가 제네릭을 발매해 외형을 키우는 전략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사진=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반대로 얘기하면 제네릭이 없었다면 오늘날 국내 제약산업의 위상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제약사들은 제네릭으로 확보한 자금을 신약 개발에 투입하며 글로벌 시장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흔히 제네릭은 만들기 쉽다는 인식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제네릭을 구성하는 원료의약품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제약산업에서 원료의약품의 자급도는 31.7% 가량에 불과하다. 2010년 19.6%에서 자급도가 큰 폭으로 높아졌지만 아직 국내업체가 만든 의약품 10개 중 7개는 수입산 원료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임박하면 제약사마다 원료의약품을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아직도 원료를 구하지 못해 제네릭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치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에스텍파마(041910)는 지난 1996년 설립 이후 다양한 제네릭 원료의약품을 만들어 제약사들에 공급하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연간 약 500억원 규모의 매출을 거두는 에스텍파마는 비싼 수입산 원료를 국산 원료로 대체하면서 국내 원료의약품의 자급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에스텍파마는 제네릭 업체들이 만들지 못한 혈전치료제, 알코올 중독 치료제, 자기공명영상(MRI조영제), 위궤양치료제 등의 원료의약품 개발에 성공, 국내외 업체들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저렴한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의 물량공세 속에서도 고품질의 제품으로 승부하며 국산 제네릭의 품질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또 자체 개발한 원료의약품을 일본이나 유럽에 수출하면서 국산 원료의약품의 해외 시장 개척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올 상반기 기준 에스텍파마는 매출의 55%를 해외시장에서 거뒀다.

에스텍파마를 설립한 김재철(55) 대표는 “1990년대까지 국내에서는 대부분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수입 원료를 국내 기술로 국산화하고 싶어 창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평범한 직장인 출신이다. 태평양제약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10년 근무하다 “주어진 일만 하다보면 직장생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연구를 원없이 해보고 싶었다”며 단돈 500만원만 들고 창업을 결심했다.

19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지금은 에스텍파마를 국내외에서 품질로 인정받는 원료의약품 회사로 육성시켰다. 직원 수도 여직원 1명에서 19년 만에 160명으로 늘었다.

김 대표는 성공 비결에 대해 “수요는 있지만 기술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는 원료의약품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1개 제품을 개발하는데 수천번의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회사 야구단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면서 맏형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올해 소속 리그에서 4점대 평균자책점에 4승을 거두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팀 승수의 절반 가량을 책임졌다. 정기적으로 임직원 수영 대회를 열어 직원들의 건강도 관리한다. 그는 “모든 임직원이 건강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는 “연구원으로서 원없이 연구를 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사진=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어떻게 창업을 결심하게 됐나.

△아모레그룹의 의약품사업부(이후 태평양제약으로 분사, 한독에 인수) 연구소에 입사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전공인 화학을 살려 연구원으로 10년 일했지만 직장생활에 한계를 느꼈다. 하고 싶은 분야는 있는데 회사에서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어 창업을 결심했다. 전 직장에서 원료의약품을 개발한 경험을 살려 원료의약품 업체를 설립했다. 연구원으로서 원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한국에도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맨 손으로 창업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 갖고 있던 500만원에 대출 500만원, 총 1000만원으로 50㎡(약 15평)짜리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시작했다. 수입 원료의약품을 국산 제품으로 바꿔보겠다는 포부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3년 동안 외부 연구소에서 자문 역할을 해주고 해당 시설을 빌려 밤새 연구하는 생활을 2년 동안 반복하면서 위염치료제 원료의약품을 개발해냈다. 3년 동안은 수입도 전혀 없었다.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나.

△무조건 열심히 연구에 매달렸다. 수요가 있지만 원료의약품을 만들지 못해 비싼 수입 원료를 사용하거나 제네릭을 내놓지 못하는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1개의 원료의약품을 만들어내는데 평균 1년 반~2년 정도는 걸렸다. 3년 가량은 매일 같이 새벽까지 연구를 진행했다. 제품을 하나하나 개발하면서 확보한 자금은 모두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처음에는 다른 업체의 330㎡(100평) 규모 공장을 임대해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2000년에 경기 안산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회사다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2007년에 공장을 신축했는데, 당시 연 매출 200억원이었는데 250억원을 투자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한번은 실험실에서는 혈전치료제 원료의약품 개발에 성공했는데도 막상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하면 불량이 나오는 사례가 발생했다. 거래처에 공급키로 한 기한은 임박했는데도 문제를 찾지 못한 적이 있다.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다는 생각으로 3~4개월 동안 밤을 새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문제를 찾아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아직도 거래처와 계약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는 처음 연구 업무를 시작할 당시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경영철학이 있다면.

△고객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조그만 약속도 허투루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부적으로 직원들과 약속도 모두 지켜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많이 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까지 목표의 50% 정도는 달성한 것 같다. 유럽 출장을 다니면서 꿈 꿨던 공장설비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갖췄다. 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등에서도 에스텍파마만의 신뢰를 구축했다고 자부한다. 최근 엔저의 영향으로 실적에 주춤하고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향후 신약, 개량신약 등 새로운 분야를 두드리며 제2의 창업을 준비 중이다. 바이오의약품 산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창업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당부할 얘기가 있다면.

△무조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준비없이 창업을 한 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웃음).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분야,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고 한번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면 안된다.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 한번 포기하면 또 다시 포기하게 된다. 기본적인 것만 갖추면 그 다음엔 열정과 노력이 결과를 좌우한다.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는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태평양제약에 입사했다. 태평양제약에서 10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1996년 에스텍케미칼(현 에스텍파마)을 설립했다. 현재 코스닥협회 부회장을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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