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시장은 잇따라 터져 나오는 시중은행 위기에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다. 파산한 은행을 구제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열 번, 스무 번이면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에도 전이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은행에 가지 않고 온라인 뱅킹으로 예금을 찾는 이른바 ‘핑거 뱅크런’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해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한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미국 자본시장 분위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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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은행 팩웨스트뱅코프(팩웨스트)는 15일(현지시각) 전날보다 17.58% 오른 5.35달러에 장을 마쳤다. 얼핏 보면 15% 넘게 올랐다고 좋아할 법도 하지만,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팩웨스트 주가는 한 달 전과 비교해 48.01% 빠졌고, 6개월 전과 비교하면 무려 79.76%나 급락했다.
이 회사 주가는 이달 들어서도 장중 30% 안팎의 낙폭을 보이며 심하게 출렁이고 있다. ‘일부 사업부 내지는 전체가 팔릴 수 있다’는 매각설이 불거진 뒤 나타난 뱅크런 사태가 불거진 여파다.
뱅크런 사태는 실제 지표로도 확인됐다. 팩웨스트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 서류에서 이달 첫째 주 보유 예금 규모가 9.5% 감소했다고 밝혔다. 매각설이 나온 직후인 지난 4~5일 이틀 동안 은행을 빠져나간 금액 규모만 약 30억 달러(4조155억원)에 달한다.
미국 금융당국과 자본시장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이어 팩웨스트마저 같은 흐름을 보이자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지난 3월 SVB 사태 때만 해도 ‘은행 파산 후폭풍은 없다’며 예금을 전액을 보장해주겠다던 호기로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달 초 JP모건의 퍼스트리퍼블릭 인수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는데 예상대로 흐르지 않으니 당혹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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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SNS와 스마트폰으로 새롭게 재편된 온라인(원격) 뱅킹 시대가 열렸다는 데 있다. 작은 우려에도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뱅크런에 동참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쉽게 말해 ‘은행으로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은행 파산 우려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유도 이러한 원격 뱅킹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우려가 발 빠르게 전달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파산한 은행들을 어떻게든 받아내던 미국 자본시장이 이러한 흐름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느냐도 관심사다. 현재 미국에는 약 4300개 가까운 은행이 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기관인 비쥬얼 캐피탈리스트에 따르면 무보험 예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은행예금) 비율이 45%를 넘는 은행만 미 전역에 28곳에 이른다.
이때다 싶어 미 지역은행에 공매도 세력까지 붙으면서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미 금융 당국은 이들 지역은행의 주가 급락 배경에 공매도 세력의 ‘시장 조작’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은행주에 대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런 흐름은 국내에도 전이될 수 있다. 미국 시중은행의 뱅크런과는 결이 다르지만, 최근 불거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나 국내 증권사들의 CFD(차액결제거래) 이슈가 대표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 인출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간편해진 상황에서 지역 기반 은행이나 2금융권 은행들은 최근 이슈에 뱅크런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