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2022년 4분기 성적표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증권가는 낮아진 눈높이마저 한참 밑도는 실적에 당황하고 있다. 이미 증권사들은 4분기 실적 악화가 단순한 ‘일회성 비용’ 탓이 아니라 경기침체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2023년 실적도 낮춰잡고 있다. 여기에 코스피는 2450선까지 다가서며 증시 과열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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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퀀트와이즈와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증권가의 전망치가 있는 국내 상장사 중 55곳이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39곳(70.9%)이 기대치 이하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어닝쇼크를 낸 곳은 현대제철(004020)이었다. 지난달 31일 현대제철은 4분기 275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시장기대치(1020억원)를 371.4% 하회하는 수준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하반기 철강 시황이 악화하고 파업 영향이 있었다”면서 “올해는 생산 정상화에 따른 매출 회복 및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통해 점진적으로 손익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POSCO홀딩스(005490) 역시 시장기대치(5610억원)를 밑돌며 425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4분기 철강가격이 하락하고 수요가 줄어들며 업황이 좋지 않았던데다 태풍 힌남노 침수로 포항 제철소 생산이 중단된 데 따른 영업손실과 일회성 비용까지 반영됐기 때문이다. 효성(004800)과 호텔신라(008770)도 기대치를 각각 160.1%, 125.5%씩 밑도는 4분기 성적표를 내밀었다.
코스피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005930)와 LG에너지솔루션(373220)도 나란히 어닝쇼크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침체 속에 4분기 영업이익이 4조3061억원이라고 밝히며 시장 기대치를 37.4% 하회하는 성적을 내놓았다. LG에너지솔루션도 전망치보다 47.6% 낮은 23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날 SK하이닉스(000660) 역시 4분기 1조7012억원의 영업손실을 발표하며 시장기대치(1조2105억원 적자)보다 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분기 단위 적자가 나온 것은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인 데다 예상한 것보다도 손실 규모가 컸다.
물론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현대오토에버(307950), 진에어(272450) 등 일부 기업들은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며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4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기업들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각각 오는 3일, 10일에 실적을 발표할 ‘빅테크 쌍두마차’ 네이버(035420)와 카카오(035720)부터 발목을 잡는다. 광고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데다 카카오(035720)는 지난해 10월 IDC센터 화재 관련 비용을 실적에 반영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증권주 역시 지난해부터 이어진 거래대금 위축과 시장 변동성에 어닝쇼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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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4분기는 ‘일회성 비용’이라는 변수가 있다. 기업들이 임직원 상여금이나 성과급, 퇴직금 등 인건비를 실적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 대금이나 리콜 등의 비용 역시 자주 반영된다.
하지만 70%가 넘는 기업이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철강이나 반도체 등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하강 우려 속에 ‘업황 침체’도 나타나고 있다. 2023년이 되고 최근 한달간 1분기 코스피와 코스닥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가 각각 10.5%, 5.7% 줄어든 점도 2022년 4분기 어닝쇼크가 ‘일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시각을 증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증시는 오르고 있다. 1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4.72포인트(1.02%)오른 2499.80를 기록하며 거래를 마쳤다. 올 들어 9.54% 상승세다. 12개월 선행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12.5배로 2021년 5월 이후 최고치까지 오른 것이다. 즉, 코스피가 기업들의 실적에 비해 많이 올랐다는 얘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3200~3300선 수준의 밸류에이션에 달한 상태”라며 “지금 상태에서 코스피가 추가 상향하기 위해서는 실적 전망치가 상향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기대하긴 어렵다”라고 우려했다.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되고 글로벌 경기 개선세가 나타나며 ‘실적 바닥론’이 대두하면 주가는 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작년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실적은 저조할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중국의 리오프닝과 경기 연착륙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면서 “이익 바닥에 대한 기대가 나타난다면 증시는 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