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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가면 기원은 일제의 탄압이었다. 구한말 단발령(1895년)은 일제 침략의 과정이었다. 대다수 조선인은 이를 거부한 채 한일강제병합(1910년)이 이뤄졌다. 이후 일제는 조선감옥령을 제정(1912년)해 재소자의 삭발을 명문화했다. 죄수부터라도 단발령을 적용하려는 의도였다. 이렇듯 재소자의 삭발 규정은 인권 침해적이고, 행정 편의적이며, 일제 잔재와 같았다.
삭발 규정은 1979년 시행령이 ‘수형자의 두발은 짧게 깎아야 한다. 교화에 필요하면 기를 수 있다’로 개정하면서 완화한다. 삭발은 앞서 언급한 부작용 외에도, 재소자끼리 위화감을 준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석방을 앞두고 삭발하면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전과자 낙인이 찍히는 점도 문제였다. 다만, ‘짧게’라는 기준이 모호했는지 이후에도 삭발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1995년 두발 규정을 예규로 마련하고 일반 3㎝, 모범 5㎝로 기준을 뒀다. 이때부터 재소자 머리는 스포츠형이라는 공식이 등장한다. 여기서 더 완화된 게 1999년 12월 법무부의 조처이다. 사실상 ‘절반의 두발자유화’까지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02년 마련한 ‘수용자 이발 등 지침’(예규)은 전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남자 수형자 이발은 앞머리 10㎝까지, 뒷머리·옆머리 각 2㎝까지 한다 ▲교도소 규율을 어긴 수형자는 스포츠형(앞머리 3㎝)으로 짧게 깎을 수 있다 ▲여성·단기 2개월형·출소 3개월 전 등이라도 위생 및 질서유지에 해당해야 한다 등이다. 이마저도 2008년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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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은 콩밥 퇴출(1986년)에 버금갈 정도로 재소자 인권과 맞닿아 있었다. 두발 완화 조처가 나오면서 신문 구독 허용(1967년)과 입소 신고식 형사처벌(1999년) 등 조처가 잇달았다. 인권위가 ‘채식주의자 재소자를 위한 식단을 고민하라’는 권고를 내릴 만큼 현재는 재소자 인권 의식이 향상했다. 20세기만 해도 재소자의 의문사가 잦았고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여건이 개선한 측면이 있다. 전주교도소는 2020년 수용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노래방’을 설치했다가 논란이 일자 폐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