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는 달리 전쟁이 길어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던 양측의 대치에 최근 작은 ‘틈’이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전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개전 이후 줄곧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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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서 전쟁으로의 변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료하기 위한 명분을 찾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주장한 것이 21세기 보통 국가에 무력을 행사한 명분이었다면, 이를 전쟁으로 인정한 것은 평화협상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군사작전을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영토까지 빼앗은 이상 양측의 타협 없는 상황 종료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종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또 크리스마스였던 25일에도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에 대해 모든 관계자들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협상에 임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초 푸틴 대통령과 협상은 없다던 우크라이나는 이미 ‘진정성 있는’ 대화에는 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진영은 푸틴 대통령의 최근 평화 협정 언급이 전열 정비를 위한 시간벌기일 뿐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평화협정에 대한 의사를 밝힌 당일인 25일 헤르손에 무차별 포격을 가한 것이 푸틴 대통령의 진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러시아가 태세를 전환할 이유도 충분하다. 국토가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광범위한 제재와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러시아 역시 이미 치명타를 입은 상태다. 전쟁 초기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밸브를 잠그겠다며 협박했던 러시아는 이제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최후의 카드로 여겨졌던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까지 시행하고 나선 마당이다.
올 연말에서 내년 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출구전략이 마련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다. 푸틴 대통령은 매년 31일 신년사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다음해 집중할 주요 정책과 비전을 밝혀왔다. 올해 신년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관련 실현 가능성 있는 메시지가 나온다면, 당사국들간의 협상 테이블이 빠르게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양측에 씻지 못할 상처와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정세와 경제에도 커다란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전환과 인플레이션,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성과 우려가 큰 내년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 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