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내 통치를 일본에 넘기는 한일병합조약이
순종 비준없이 내각대신 이완용 기명·날인으로 체결
위조된 위임장과 형식상 무효인 조약 탓에 대한제국 멸망
일제강점 시작하고 36년간 불법으로 식민지배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자기 소유를 상대에게 건네다)한다.’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이 1910년 8월22일 체결됐다. 위와 같은 내용을 제 1조에 담은 조약의 전문은 이렇다. `한국 황제 폐하 및 일본국 황제 폐하는 양국 간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해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해,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만 한 것이 없음을 확신했다.`
| 1910년 8월29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린 한일병합조약.(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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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은 1910년 8월29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실렸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스스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허울로나마 유지해오던 민족의 정기가 끊기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한다. 역사는 이를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경술국치)로 기록한다.
그러나 조약은 형식과 실질에서 모두 무효다. 조약에는 순종의 기명과 국새(國璽· 나라를 대표하는 도장)가 없다. 대신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이 순종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기명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순종이 이완용에게 전권을 위임한 위임장의 서명이 가짜다. 훗날 연구로 순종의 서명을 날조한 것이 드러났다. 위임받지 않은 이가 기명·날인한 조약은 효력이 없다.
| 한일병합조약. 빨간 원이 이완용의 기명.(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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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조약의 위임장이 진짜여도 이완용은 순종의 위임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일제는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과 을사조약(을사늑약)을 맺었다.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의 전신 격)를 한국에 설치해 내정에 간섭하는 게 골자다. 이렇게 설립한 통감부는 1907년 이완용을 내각대신으로 하는 내각을 수립했다. 한국을 통치하기 위해 수립한 괴뢰 내각이다.
| 한일병합조약 한국측 전권 위임장. 문서 왼쪽에 순종의 이름 ‘척’(土+石) 자 서명은 위조된 것이라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7년 펴낸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에서 밝혔다.(사진=이태진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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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을사조약에도 당시 황제 고종의 기명과 날인이 없다. 조약은 국가 간에 맺어야 하기에 각국을 상징·대표하는 인물이 관여해야 유효하다. 대한제국은 전제군주제였기에 황제 고종이 나서야 한다. 고종이 끝내 을사조약에 비준을 거부했다.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다가 퇴위된 것을 참고할 만하다. 일제는 당시 외부대신 박제순을 시켜 을사조약에 기명·날인하도록 했다. 박제순은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위치가 아니므로 이 조약은 무효다.
무효한 을사조약으로써 등장한 통감부와 통감부 휘하 이완용 내각이 주체가 된 행위도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일병합조약도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옳다. 유효하지 않은 한일병합조약에 찬성·협조한 경술국적 8인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공상부대신 조중응, 친위부 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승녕부총관 조민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