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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동안 맞벌이 부부로 살다 보니 가사 일이나 육아 일이 어느 한쪽 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30년 전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에겐 당연한 일이었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통상업무 발령 후 밤을 새워 인터뷰 준비를 했는데, 첫 질문이 ‘야근은 할 수 있느냐?’였고, 두 번째 질문이 ‘술은 좀 마시냐?’였다. ‘유리 천장’ 뿐만 아니라 ‘유리 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버티기 위해선 실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유명희 경제통상대사)
△“저는 한 어머니의 아들이고, 한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남성이기도 하고 한 딸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이 모든 걸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국적, 성별, 인종 무엇이든 간에 차별받는다는 자체로 가슴 아프고 슬프다.”(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공직을 꿈꿨던 건 제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만 해도 여성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가고 싶었지만, 대기업에서 뽑는 인재 기준은 거의 전부 군필자였다. 선택지가 없었다.”(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나는 여성이라서’, ‘아이가 있어서’라는 식으로 한계를 짓는 순간 그게 바로 자기 위치가 돼 버린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보이고 딛고 일어날 힘이 나온다. ”(이진숙 인천경찰청 프로파일러)
△“가끔 ‘모성애’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개인적인 노력, 조직력에 모성애까지 발휘되면 개별 직원과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다.”(김희 포스코 생산기술전략실 생산기술기획그룹장)
△“사업의 성장은 ‘운칠기삼’이라고 할 정도로 운이 정말 중요하다. 저는 그 운을 지금 저희 세대 용어로 다시 변환하자면 트렌드로 해석할 것 같다.”(이혜민 핀다 대표)
△“저도 만화를 보면 엄마가 만화책을 불태웠던 그런 세대였다. 웹툰 작가가 됐을 때도 엄마는 ‘얘가 돈은 버는데 방구석에 처박혀서 뭘 하나’ 생각하셨다.”(서이레 웹툰 작가)
△“믿을만한 회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좋은 직장(카카오)을 그만두고 도전하기로 결심했다.”(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
△“주부로 살다가 가족들이 아파 우리 생활을 위협하는 질환이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했다. 환경오염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노물질이 우리 몸에 끼치는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독성학 연구의 시작이다.”(박은정 경희대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
◇특별취재팀=윤종성, 김영환, 노희준, 윤기백, 강민구, 김범준, 김보영, 이은정, 권오석, 김정현, 김연지, 김보겸, 배진솔, 공지유, 김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