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은 48.8%의 여성이 참여하는 대회 사상 첫 번째 성평등 올림픽이 될 것입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2020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번 올림픽이 '성평등 올림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올림픽을 구성하는 여러 형식이 이를 뒷받침했다. 기수를 남성선수, 여성선수 한 명씩 배치했고 혼성경기를 늘렸다. 2016년 리우에서는 9개 종목에서 혼성 경기가 펼쳐졌고 이번 도쿄올림픽에는 18개 종목에서 혼성 경기가 열렸다. 이번에 신설된 양궁 혼성경기에서는 안산, 김제덕이 우리나라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창설 당시 구호는 '남성의 스포츠, 여성의 환호 갈채'였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은 "여자들의 움직임은 경기의 엄숙함을 해친다. 올림픽에서 여성은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회 올림픽에 여성은 참가하지 못했다.
여성 선수의 출전을 허용한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는 전체 선수 997명 중 단 22명만 여성이었다. 이후 IOC는 여성 종목과 혼성 종목을 늘려왔다. 2013년 개정된 올림픽 헌장에는 '성평등은 올림픽의 최우선 사항'이라는 방침을 담았다. 2020 도쿄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선수의 비율이 거의 동일한 대회다.
체육철학자인 김정효 박사(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강사)는 "올림픽뿐만 아니라 근대 스포츠는 그 출발부터 남성중심주의"였다며 "표면적으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스포츠에는 여전히 남녀 불평등이 굳건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는 탁월성의 발휘로, 스포츠는 선수의 신체적 탁월성을 겨루는 게임이지만 남성중심주의는 여성 선수들에게 신체적 탁월성에 더해 '섹슈얼리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남성 관객 모으려 선정적 유니폼 강요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자선수의 유니폼 이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 여자 프로농구를 시작으로 여성 스포츠의 프로화가 확산됐다. 이 시기 여성 유니폼은 하나의 흥행 코드로 여겨졌다.
대표적인 것이 여자 농구의 '쫄쫄이 유니폼'이다. 몸에 딱 달라붙는 일체형 수영복 형태의 유니폼으로 도입 초반부터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후 여자 농구는 품이 넓은 유니폼을 도입했다.
여자배구 유니폼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대한배구협회는 1999년 슈퍼리그 개막을 앞두고 어깨와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가 선수들의 반발로 물러섰다.
2013년에는 여자배구 흥국생명이 짧은 바지 위에 치마를 더한 '치마바지 유니폼'을 도입해 배구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일었다. 이후 여자배구 유니폼은 지금의 신체에 딱 달라붙는 상하의 스타일로 정착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배구 유니폼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여자선수에만 유독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유니폼을 요구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배구팬들은 대한배구연맹 홈페이지에 유니폼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담은 글을 올렸다. 대한배구연맹의 유니폼 규정에 따르면 "허리와 길이(하지장 12cm이내)는 타이트해야 하며 몸선에 맞아야 한다. 반바지 스타일(치마바지)이거나 골반쪽으로 파인 삼각형 모양이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박한솔(26) 씨는 "경기력에 문제가 된다면 남자 선수들도 타이트한 옷을 입혀야 하지 않냐"며 "여자 선수만 민소매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조모씨(26)씨는 "여자배구 유니폼은 보기 약간 민망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SNS에 여자배구 유니폼 문제를 거론해 주목받은 정모(22)씨는 "여자 배구 경기 중 선수들이 중간중간 (몸에 붙는) 바지를 내리고, 민소매 안으로 속옷끈을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등 현재의 유니폼은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선수들이 더이상 유니폼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니폼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배구연맹은 이런 문제제기에 "V-리그 유니폼 관련 규정은 국제배구연맹인 FIVB의 유니폼 규정에 따르고 있다"면서도 "우려하시는 점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니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답변을 남겼다.
독일 여자체조선수들 전신유니폼 등 변화 조짐
해외에서는 선수들이 나서 유니폼 변화를 이끌고 있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 '전신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이전까지 여자 기계체조 선수들은 비키니 컷의 원피스 수영복에 소매만 덧대진 유니폼을 주로 착용해왔다. 독일 대표팀 엘리자베스 세이츠 선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신 유니폼을 입은 이유에 대해 "편안해서"라고 답했다. 국제체조연맹에 따르면 체조경기에서는 다리 전체를 가리는 유니폼도 허용된다.
지난달 18일에는 유럽 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이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가 1500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아 논란이 됐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의 규정에 따르면 여성 비치핸드볼 선수는 '밀착된 핏으로 다리 윗부분을 향해 위쪽 각도로 옷의 구멍이 나있는 비키니 하의'를 입어야 한다.
미국 팝가수 핑크는 이 소식을 듣고 지난달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벌금을 낼 테니 계속 싸워달라"고 적었다. 해당 규정에 비판이 지속되자 유럽핸드볼연맹은 26일 입장문을 통해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과 소녀의 평등을 지지하는 주요 국제 스포츠단체에 벌금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유니폼 이슈는 신체의 '탁월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스포츠의 본원적 가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자 '섹슈얼리티'를 떼어내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김 박사는 "유니폼을 규칙으로 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그것을 규칙으로 규정해 놓은 것은 여성성을 여자 선수에게 강요하는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스냅타임 이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