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보험업계와 야당의 반대로 관련 법안(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근퇴법)이 국회에서 계류되는 만큼 일단 법안 통과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현재 회사에서 알아서 정해진 수익을 보장해주는 확정급여형(DB형)과 달리 DC형 가입자는 스스로 퇴직연금 운용 지시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DC형 적립금의 83.3%인 58조원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돼 있다. 최근 5년간 DC형 연평균 수익률은 1.64%에 그친다. 이 때문에 1%대에 머무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고자 별도의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사전에 합의한 적격상품에 투자하자는 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
◇ 금투협회장 “수익률 제고 취지내에서 원리금상품 포함돼야”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은 15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올 초부터 국회에서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한 디폴트옵션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이나 상품 유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며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익률 제고’라는 취지 내에서 원리금보장 상품 역시 디폴트옵션 유형(적격상품)에 포함돼야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회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같은 입장 변화는 지난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에서 감지됐다. 국회에 출석한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가입근로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추가하는 윤창현 의원 대안을 검토하겠다”며 “최근 은행연합회, 보험협회 등에서 추가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금융투자협회에서도 이에 동의하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측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실적배당형 상품만 추가하는 게 맞지만, 가입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 추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2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근퇴법이 반 년 넘게 지지부진해지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여당이 조속한 입법 통과를 위해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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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입자 위해 조속히 도입해야 vs 무늬만 디폴트옵션 될라
금융투자협회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상품 편입을 공식화한 데 대해 업계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도입 법안이 기존 은행, 보험업계의 반대에 막혀 진전되지 못하는 만큼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디폴트옵션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며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가입자들의 수익률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입자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도 디폴트옵션이 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다같이 망하는 원리금 보장상품에서 탈피하자고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것인데, 디폴트옵션에 또다시 원리금 상품을 넣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금융투자협회가 국회, 정부, 업계 설득에 얼마나 나섰는지도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실제 디폴트옵션 도입 법안을 두고 지난 4월 28일 열린 환노위 소위 비공개 간담회에선 대부분 전문가들이 원리금보장 상품 편입을 반대했다. 박종원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재무학회장)은 “디폴트옵션 도입 목적이 침체된 현 퇴직연금 시장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전문적인 운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폴트옵션에서 제공하는 상품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시키는 것은 큰 의미와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금투업계가 원리금 보장상품을 편입한 것은 기존 퇴직연금 시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은행, 보험업계와 야당의 반대를 딛고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직 세부안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수익률 제고라는 취지하에선 100% 원리금 보장상품만으로 구성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만약 디폴트옵션에서도 원리금 보장상품이 100% 편입될 경우 일본처럼 무늬만 `디폴트옵션`인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입자가 가져가야 할 수익을 금융회사가 챙기게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금투업계가 무리한 주장을 하다가 국회 통과가 안 되니 받겠다는 식”이라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업권간 이견은 사라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