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부터 DMZ 평화의 땅 철원 구간 개방
총 15km, 3시간 코스에 달해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화살머리 GP까지
민간인에 최초 DMZ 내부 개방 등
| 백마고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의 역곡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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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역곡천(逆谷川). 북측 강원도 평창군에서 발원해 북측 철원군을 지나 남측 철원군으로 들어온 뒤 다시 북측 철원군으로 흘러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무슨 연유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그 이름 안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다. 다만 물길이 남에서 북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오랜 통제와 삼엄한 경계로 역곡천은 사람의 자취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흐릿한 기억마저 단단한 자물쇠처럼 닫혀버린 것이다. 다만 이 물길만은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간다. 전란과 수복의 와중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금단의 땅에 새로운 길이 곧 열린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무려 66년 만이다. 바로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이다. 고성 구간에 이어 DMZ에 두 번째로 열리는 길이다.
| 백마고지 휴게소에서 백마고지 전적비로 오르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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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번이나 주인 바뀐 피의 백마고지
철원은 도처가 ‘닫힌 땅’이다. 민통선의 철조망이, 군부대의 담장이, 그리고 지뢰 지대의 삼각 경고 표시가 길을 막아선다. 그 너머에는 틀림없이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이 있을 터. 차단과 통제 너머의 땅은 그렇게 저 스스로 자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구간은 3.5km의 도보 코스를 포함해 총 15km에 달한다. 넉넉잡아 3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압축해서 보자면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시작해 백마고지 조망대를 거쳐, 남방한계선을 오른쪽에 두고 군사 도로를 따라 걷는 구간을 지난다. 이후 공작새능선 조망대에서 다시 차량으로 통문까지 옮겨와 그곳에서 신원 확인 등을 거쳐 화살머리고지를 찍고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 김종오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유품을 백마고지 승전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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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의 시작은 백마고지휴게소다. 이곳은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 탐방안내소 역할을 한다. 탐방객들은 탐방에 대한 설명은 물론 안전과 보안 등의 교육을 받아야만 비로소 본격적인 탐방에 나설 수 있다. 교육을 마친 탐방객이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은 ‘백마고지전적비’다. 이 전적비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위령비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9사단과 중국 인민군 제38군 3개 사단은 이 고지를 투고 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이어진 이 전투에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정확하게는 우리 국군이 21만 9945발, 적군인 중국 인민군은 5만 5000여발이었다. 당시 양 측의 피해도 엄청났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국군은 3500명, 중국 인민군은 1만 4000여명에 달했다. 이 전투로 중국 인민군 2개 사단이 와해됐을 정도였다. 폭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백마고지는 본래의 모습을 잃고 높이도 1m나 낮아졌다고 한다.
전적비 오른쪽에는 시계탑이 있다. 이 탑은 멈춰진 시계탑의 바늘이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염원과 분단의 슬픔을 공유하고자 세워졌다. 좌측면 시계는 10시 15분을 가리키는데 이는 우리 국군의 승리 일자를, 전면 시계의 6시 25분은 한국전쟁 발발 일자를, 측면의 9시 5분은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한 9사단과 현 5사단의 책임 지역임을 의미한다.
| 백마고지 전적비 오른쪽에 있는 6.25 시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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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백마고지를 둘러보다
백마고지 전적비 언덕 뒤쪽에 자물쇠로 잠긴 철문이 덜컹 열린다. 지금부터가 사실상 DMZ 평화의길 철원 구간의 시작점이다. 이 안쪽은 출입증을 지닌 지역 농민을 제외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기서부터 백마고지 조망대까지 약 1.5km 구간은 차로 이동한다.
조망대에 서면 백마고지를 비롯해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란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북과 남쪽으로 2km씩을 비워 놓은 공간이다. 이 지역은 유엔사령부가 관할한다. 이론상으로는 2km지만, 지도 위의 숫자일 뿐 실제로는 지형을 고려해 남방한계선이 그어졌다. 이곳은 남방한계선에서 좀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곳이다. 실제로 북측 초소까지 짧은 곳은 1.8km, 길어봐야 2.2km에 불과하다.
| 백마고지 전적비 오른쪽에 있는 6.25 시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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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대에 오르면 백마고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역곡천도 철책 너머로 볼 수 있다. 역곡천은 한탄강의 원류로, 비무장지대인 이북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나간다. 한국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북측 철원 땅의 봉래호가 넓디넓은 철원평야를 흠뻑 적셨다. 중국 인민군은 이 봉래호의 둑을 무너뜨림으로써 백마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패전으로 물러난 뒤 김일성은 봉래호를 다시 막았다고 한다.
백마고지 조망대에서 다시 공작새능선 조망대까지인 3.5km 구간은 도보로 이동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와 긴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사실 남방한계선 철책에 바짝 붙어 걷는 것이 아니라 철책에서 5~20m 정도 떨어진 도로를 따라 걷는 코스다. 그래도 최전방의 무거운 적막과 함께 평화의 고요함을 느낄 유일한 기회다. 공작새능선 조망대에 서면 역곡천과 공작새 능선, 백마고지 측면, 화살머리고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 화살머리고지 가는 길은 한번도 민간인에게 개방하지 않은 비무장지대(DMZ) 통문을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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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에게 처음 개방하는 ‘진짜 DMZ’
| 화살머리고지 GP에서 탐방객들이 북측을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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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능선 조망대에서 다시 차를 타고 1.3km 이동하면 ‘진짜’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 앞이다. 여기서 탐방객은 신분증과 휴대폰을 수거한다. 카메라도 물론 맡겨야 한다. 굳게 잠긴 통문이 열리자, 차량이 DMZ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상 정전 후 민간인에게는 최초로 공개한 공간이다. 강원도 고성 구간은 DMZ로 들어가는 추진철책선 통문 앞까지만 들어갈 수 있지만, 철원 구간은 철책선 통문을 열고 DMZ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는 말이다. 우리 군이 최초로 민간인에게 허락한 길인 셈이다. 탐방객은 물론이고, 경호를 위해 동행한 무장 군인들의 표정에도 긴장이 묻어났다.
차량의 목적지는 화살머리 고지와 GP. 화살머리 고지는 한국전쟁의 막바지 격전지다. 정전협정과 군사분계선 확정을 앞두고 이 고지에서는 한뼘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고지전이 펼쳐졌다.
GP는 비상주 GP다. 거대한 벽이 4면을 둘러싸고 있다. GP는 1, 2층으로 나뉘어 있다. 1층에는 깨진 철모와 여남은 개의 총탄 구멍이 난 수통, 장전된 소총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남북이 유해 발굴과 지뢰제거 작업을 하면서 찾아낸 물품이다. 이 유해들은 한국전쟁 당시 화살머리 고지전에서 희생된 국군과 미군, 프랑스군의 유해와 함께 발견된 물품들이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한 상엄한 경계 때문에 유해를 수습하지 못해서였다. 유해 발굴 현장에서 발견한 유해는 지금까지 300여점. 그중 일부를 여기에 전시하고 있다.
| 화살머리 고지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견한 철모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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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2층은 외부로 이어진다. 사방이 탁 트여 있다. 그 위로 태극기와 유엔기가 나부끼고 있다. GP 내부를 제외한 외부 공간은 눈으로만 담아야 한다.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장소여서 촬영은 엄격히 통제했다. 전방 2km 내외 거리에 북한 GP 4개가 있어서다. 군 관계자는 “소총 등의 사정거리는 아니다”라며 탐방객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북측에서 특이 징후가 보이면 바로 탐방을 중단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갈등과 대립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 강원도 철원 dmz 투어 도우미인 세르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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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팁= 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 탐방은 오는 6월 1일부터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만 탐방에 참가할 수 있으며 10세 미만 아동은 참가를 제한한다. 참가 신청은 4인 이하만 가능하다. 4인을 초과하는 단체 신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탐방은 화요일과 목요일을 빼고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한다. 회당 탐방 인원은 20명으로, 해설사 1명 및 관리자 교육과 응급조치를 수료한 군청소속 셰르파 2명이 동행한다. 차량 이동 코스에서는 16인승 차량과 12인승 차량 2대에 나눠탄다. 탐방 당일 참가자들은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날씨에 따른 비옷이나 우산, 생수 등은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 남방한계선을 따라 걷고 있는 탐방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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