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감사인 지정제'의 안착을 바란다

고준혁 기자I 2018.02.15 05:00:00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 진일회계법인 대표
지난해 스위스 국제개발경영연구원(IMD)이 발표한 회계감사 적절성 평가 결과 우리나라 성적표는 63개국 중 최하위였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 문제가 발생하는 등 회계부문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결과다.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인회계사에 의한 외부감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기업지배구조 특성으로 인해 이사회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인 또한 을의 위치에서 저가수주 경쟁을 펼치면서 일부 객관적이지 않은 감사를 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는 국회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이슈와 논점’에 들어 있는 내용 중 일부다.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와 관련해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한 배경을 언급한 것으로, 감사의 문제점을 여실히 말해준다.

회계감사제도 역사를 보면 1980년 이전에는 기업의 회계감사인, 즉 공인회계사를 정부가 지정했다. 그러다가 1980년 초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정 후 감사인 선임제도를 피감사인, 즉 기업이 감사인을 선임하는 자유선임제도로 바꿨다. 이후 약 40년간 우리나라는 회계 투명성 세계 최하위라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런 성적표의 근본적인 원인은 회사(갑)와 공인회계사(을) 간의 ‘갑을 관계’ 고착에 있다. 회계연도 결산 결과 손실을 보았으나 이익이 난 것처럼 결산보고서를 작성해 은행이나 투자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회사는 결산보고서와 장부를 꼼꼼이 살펴본 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공인회계사를 두번 다시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성 유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요건이 갖춰지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회계감사제도 뿐만이 아니다. 모든 감사제도가 마찬가지다. 감사보고서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독립성이 없는 감사인의 감사보고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참외밭에선 신발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단지 신발끈만 고쳐맸음에도 불구하고 참외서리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회계감사제도는 이러한 속담의 기본취지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구조로 운영돼 온 것이다.

결국 공인회계사의 감사보고서에 대한 독립성 의혹으로 자본시장의 파수꾼이 돼야 할 공인회계사가 자본가의 파수꾼 역할을 해오면서 온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됐다. 회계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거셌던 것도 이러한 문제 때문이다.

자성의 목소리는 학계 중심으로 확산됐다. 학계는 회계제도의 연구논문과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자유선임제도 아래서는 회계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같은 문제인식과 노력 끝에 지난해 상장법인에 감사인 지정제도를 도입하는 등 회계감사 제도 개정이란 결실을 이뤄냈다. 갑인 일반 기업이 아닌 정부가 각 기업의 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감사인등록제 도입시 공정한 평가제도를 마련해 기회균등을 유지해야 한다. 감사인 지정방법에서 단순히 갯수가 아닌 회사자산 규모를 반영하는 등 제도보안이 필요하다. 아울러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실무경력을 충분히 반영토록 하는 등 공정한 회계감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비상장법인에도 지정제도를 도입해 회계투명성이 세계 10위권 내에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인회계 업계 내부의 변화다. 더 이상 법률이나 환경 탓만 할 수 없다. 공인회계사들이 앞으로 원칙대로, 제대로 감사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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