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수리온 전력화는 우리 국방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입증한 쾌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5월 수리온 전력화 행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국내 기술로 만든 헬기가 우리 군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전 세계 11번째 헬기 자체 개발국가 반열에 오른 것이다.
우리 군은 육·해·공군 3군이 총 690여대의 헬기를 운용하고 있는 세계 6대 헬기 보유국이었다. 하지만 수리온이 전력화 되기 전까지는 모두 외산 제품이었다. 구입 뿐 아니라 운영유지 역시 해외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외화 유출 문제도 컸다.
특히 우리 육군의 기본헬기인 ‘UH-1H’와 ‘500MD’ 노후화에 따른 부속품 지원 문제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우리 군은 2001년 한국군의 요구 성능에 맞는 한국형 헬기 개발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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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온이라는 이름은 독수리에서 따왔다. 하늘의 제왕이라 일컫는 독수리의 용맹함과 빠른 기동성을 의미하는 ‘수리’에 숫자 100의 순우리말인 ‘온’을 결합했다. 100% 국산화와 완벽함을 추구했다는 의미다.
당초 ‘한국형다목적헬기(KMH)’ 프로젝트로 시작된 수리온 개발은 2004년 사업타당성 검토에서 기동형을 우선 개발하고 향후 공격형으로 추가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공중강습작전과 지휘·통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헬기 개발이 2006년부터 시작됐다. 총 사업비 1조3000억원(국방부 8300억원·산업통상자원부 4695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에는 주사업자인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 외에도 한화(000880), 삼성테크윈(現 한화테크윈), LIG넥스원(079550) 등 98개사가 협력업체로 참여했다. 해외 협력업체도 유로콥터 등 49개사가 함께 했으며 18개 대학 및 10개 연구소가 함께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통상 헬기 개발에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수리온 개발은 소요군인 육군의 요구에 따라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마무리 해야 했다. KAI 관계자는 “국산 완제기인 KT-1과 T-50의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와 생산이 컴퓨터 시스템으로 함께 진행되는 동시 공학 설계를 적용해 설계의 오류와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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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기본설계를 마무리해 헬기의 외형을 확정한 개발진은 상세설계와 함께 2007년 11월 부품가공을 시작으로 사업착수 3년 2개월만인 2009년 1월 시제 1호기를 출고했다.
시제기 제작이 마무리 되긴 했지만 혹독한 시험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전력화 된 외산 헬기 보다 성능이 더 우수해야 한다는 군 당국의 요구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알래스카 현지에서 저온 비행 운용 능력을 시험했다. 국산 항공기를 해외에서 시험·검증한 것은 수리온이 최초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리온은 당초 저온 성능 확인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의 환경시험장에서 저온시험을 진행했다. 영하 32도 및 영하 40도 조건에서 엔진시동과 각 계통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영하 45도에서도 신뢰성 테스트를 진행했다. 3차례의 저온시험을 통해 영하의 온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이상 현상을 식별해 개선했다.
하지만 실험실 내에서의 저온 운용능력만으로는 부족한 군 당국과 개발진은 실제 환경에서도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고 하는 강원도 양구에서 진행된 실험이었지만 기온이 영하 23도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군 당국은 실험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리온이 실제 영하 30도 이하에서도 이상없이 가동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 알래스카주 페어뱅크스에서 저온 비행시험을 하기로 한 이유다.
영하 32도 이하의 실제 환경에서 12시간 이상 노출시킨 후에도 수리온은 이상없이 움직였다. 최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 상황에서 50여 회 시험을 진행했다. 121개 시험 항목을 통해 저온 비행능력을 검증한 수리온은 운용 영역을 영하 32도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수리온은 특히 가혹한 내구성 시험도 거쳤다. 헬기의 핵심 구성품인 엔진과 트랜스미션(변속장치), 로터(헬기 회전부) 등은 일정 수준의 내구성이 있어야 안정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하다. 수리온을 지상에 결박하고 220시간 동안 가동하는 시험을 통해 내구성을 검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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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온의 가장 큰 장점은 자동비행 기능이다. 목표지점을 미리 정해놓으면 이륙 후 해당 지역까지 별도의 조작없이 알아서 비행한다. 야간이나 악천후의 기상조건 아래서도 작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자동 제자리비행 능력도 보유하고 있어 고난도 정밀 화물 공수작전도 동종 헬기인 UH-60 등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체 개발한 4축(상·하·좌·우) 자동비행조종장치와 디지털 동력조절장치 덕분이다.
수리온은 프로펠러를 제외한 헬기 본체만 15m, 높이 4.5m, 폭 2m 크기다. 조종사 2명과 기관총사수 2명, 완전무장병력 9명 혹은 조종사 2명과 2289Kg의 화물을 실을 수 있다. 수리온의 최대 이륙중량은 8.7톤이다. 최대순항속도 140노트(Kts·259Km/h)며 제자리 비행이 가능한 고도가 9002피트(ft)나 된다. 백두산 높이(2744m)에서도 에서도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산악지형을 고려해 분당 500피트의 속도로 수직 상승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프로펠러 등의 로터계통과 조종석, 엔진, 연료탱크 등은 총탄을 맞아도 관통되거나 터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내탄 능력을 갖고 있다. 피격되더라도 헬기의 안전귀환을 보장하는 기능이다. 적 위협을 미리 알려주는 자동경보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주요 헬기 품목의 운용성을 나타내는 상태감시장비(HUMS)를 탑재해 결함과 수명주기에 대한 실시간 정보로 안정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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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리온은 우리 육군에 전력화 돼 인원 수송과 감시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군내 응급환자의 신속한 후송을 전담하기 위해 지난 해 창설된 의무후송항공대(일명 메디온부대)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메디온 부대는 수리온을 통한 신속한 후송으로 지난 1년 간 78건 83명의 생명을 살렸다. 수리온 헬기를 개조한 의무후송 전용헬기는 현재 개발을 완료해 2018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수리온 기반의 해병대용 상륙기동헬기도 개발이 완료돼 생산을 앞두고 있다. 상륙기동헬기는 전술항법 장비, 장거리 통신용 무전기 등을 장착하고 있으며 바다에 비상착륙시 전복되지 않고 물에 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비상부주장비까지 갖췄다. 보조연료탱크도 추가해 항속거리를 늘렸다. 지난 해 시험에서 포항~독도를 왕복 3시간 이상 총 524km를 비행한바 있다. 또 함정 적재가 가능하도록 날개 접이장치를 개선하고 바닷물으로부터 기체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방염 처리를 하는 등 함정과 해상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수리온은 해상작전헬기로도 변신할 예정이다. 해상작전헬기는 적 함정과 잠수함을 탐지하고 탑재된 대함 및 대잠 무기를 이용해 공격까지 수행하는 특수한 헬기다. 헬기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현재 우리 군은 차기 호위함에 탑재할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차 사업에서는 기종이 ‘와일드 캣’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영국 핀메카니카(옛 아구스타웨스트랜드)의 AW-159가 선정됐다. 올해 안에 8대가 들어올 예정이다. 12대를 전력화하는 2차 사업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되는데 KAI는 이 사업에 수리온 기반의 해상작전헬기를 개발해 도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