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전·월셋집 상담이 요즘 부쩍 늘고 있어요.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왔는데, 다시 나가야 할 판이니 걱정이 큰 거죠.”(서울 서초구 잠원동 H공인중개사)
서울 강남권 재건축시장이 전·월세난의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올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마치고 내년 상반기 본격 이주하는 단지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지역을 찾았던 세입자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나날이 오르는 전·월셋값에 다시 강남을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내년 1분기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재건축사업으로 이삿집을 싸야 하는 아파트는 8000여가구에 달한다. 올해 연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이주·철거를 앞둔 단지들이다.
지난 8일 조합원 총회에서 재건축 관리처분계획인가를 통과한 고덕주공 4단지(410가구)는 이미 지난 22일 이사를 시작해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강남구 개포주공 2단지(1400가구)는 지난달 30일,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6600가구)는 이달 9일 관리처분계획을 갈무리했다. 서초구에서도 서초 한양(456가구)·반포 한양(372가구)·잠원 한신5차(555가구)가 내년 2월 말에서 3월 초로 이주 날짜를 조율 중이다.
문제는 인근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점이다. 재건축 단지 주변 아파트에 대한 전세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전용면적 79.47㎡형은 2주 새 전셋값이 1억~1억5000만원 가량 뛰었다. 유재환 잠원한신공인 대표는 “서초·잠원동에 입주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전셋값이 많이 뛰었지만 오른 가격에도 계약하려는 수요가 넘쳐난다”고 전했다.
월셋값 상승세도 가파르다. 서초동 래미안아파트 전용 84.97㎡형은 올해 초 보증금 5000만원에 월 임대료 230만원 선이었지만 최근 월세가 20만원 가량 뛰었다. 강동구 고덕주공 3단지는 인근 4단지 이주 여파로 전용 52㎡형의 월셋값이 한달 새 보증금 1000만에 월 50만원에서 65만원으로 올랐다.
특히 초등·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잠원한신5차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김진연(여·42)씨는 “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셋집을 아직 못 구해 학군을 벗어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은 “서울 강남권에선 2000년대 중반 잠실 재건축 단지 전세난을 경험했는데도, 서울시는 이번 이주 시기 분산에 또 실패한 것 같다”며 “앞으로 2년간 한강 이남지역의 전세대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과 매달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 매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서도 “학군 이동과 인근 단지의 전셋값 상승에 대한 대책 방안은 사실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