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고 자세하게 보고'..미지의 대상 '인간 뇌'를 그린다

이승현 기자I 2014.10.29 00:00:10

미·EU·일, 치매 등 뇌질환 치료 위해 '뇌지도 프로젝트' 시작
'전국지도' 또는 '동네지도' 형태.."멀티스케일로 살아있는 세포 관측 구현해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인간의 뇌. 미국 ‘사이언스 프로그레스’(science progress)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지난 2012년 말 세계적인 뇌과학자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실험용 쥐 뇌의 망막 영역에 대한 지도를 집단지성을 이용해 그려가는 ‘아이와이어’(EyeWir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인 참가자들이 온라인(www.eyewire.org) 상에서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쥐 뇌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신경세포(뉴런·neuron) 등을 찾아 연결해 뇌 신경계를 완성해나가는 게임이다. ‘3차원 영상의 뇌 신경세포 지도’(커넥톰·connectome)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100여 개 국가에서 14만 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선 이달부터 이동통신회사인 KT(030200)가 이 게임의 한국판 버전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1차 목표는 쥐 망막의 특정구역에 있는 348개 뉴런의 구조 파악이다. 지금까지 95개 뉴런의 구조를 밝혀냈다고 한다.

쥐 뇌의 지도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뇌를 완전히 그려내기 위한 머나먼 여정의 출발단계다. 인류는 먼 은하를 탐험하고 소립자도 규명했지만 두 귀 사이의 무게 1.4kg 신체조직(뇌)은 미지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있다.

인류는 과학적 탐구를 위해 그리고 당장 치매와 자폐, 파킨슨병 등 뇌질환 치료를 위해 자신의 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을 한 눈에..미·EU·일 ‘스타트’

인간의 뇌는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세포인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전기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의식과 신체 행동 등을 조정한다. 뉴런들의 접촉 지점에는 시냅스(synapse)가 있어 신호전달을 담당한다.

뇌 지도는 어느 위치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노미터(1nm = 10억분의 1m) 크기의 뉴런과 시냅스의 구조(연결 네크워크)를 시각화(영상화)하고 각각의 기능을 파악한다.

퇴행성 뇌질환은 뉴런 파괴나 신호전달 이상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만약 뇌 영역과 그 안의 뉴런 및 시냅스의 구조와 기능을 알면 답이 없는 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획기적 실마리를 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인간의 뇌 지도를 작성해 난치성 뇌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선진국들이 나섰다. 미국은 10년간 총 30억 달러를 투자하는 ‘브레인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를, 유럽연합(EU)도 10년간 모두 10억 유로를 들이는 ‘휴먼브레인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 9월 마모셋 원숭이를 이용한 총 70억엔 규모의 ‘뇌 지도작성 프로젝트’(Brain/MINDS)를 발표했다.

인간 뇌 지도는 각각 1000억 개의 뉴런과 150조 개의 시냅스를 시각화하는 실로 엄청난 작업이다. 지난 2003년 완료된 ‘인간 게놈프로젝트’(인간 게놈의 모든 염기서열 해석) 이후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겉에서 크게 보기와 안에서 자세하게 보기

뇌 지도는 영역들을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보는 방법과 특정 영역의 내부를 ‘미시적으로’ 보는 방법으로 나뉜다. 비유를 들자면 ‘전국지도’와 ‘동네지도’인 것이다.

미국 UC버클리대의 헬렌윌스 신경과학 연구소의 4T(테슬라)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기능자기공명영상(fMRI)과 양전자방출단층사진(PET)은 거시적으로 보는 장비이다. fMRI는 특히 살아 있는 뇌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최적의 기기로 손꼽힌다. 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하면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해지고 이때 혈관 내 산소농도 변화에 따라 영상이 변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fMRI의 최대 해상도는 1mm로 뇌 주요 부위를 영상화하고 특정 부위 역할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뉴런과 시냅스는 볼 수 없다. 전국지도용 기기로는 동네지도를 못 만드는 것이다.

뉴런과 시냅스 관찰에는 주로 전자현미경이 이용된다. 쥐 등 동물의 뇌 일부를 꺼내 아주 얇게 자른 뒤 단면(슬라이스)들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다. 이 2차원 이미지들을 연결해 3차원의 뇌신경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아이와이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 방법으론 뇌의 영역 등 큰 그림은 볼 수 없고 죽은 세포만 볼 수 있어 기능 파악도 어렵다.

이계주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국지도와 동네지도를 결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며 “미국 브레인이니셔티브도 처음 5년 동안 최적화된 시각화 기술을 개발하고 이후 5년간 실제로 지도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멀티스케일로 살아있는 뇌 세포 보기’..기술한계 넘어야

뇌의 구조와 기능을 완벽히 담은 지도 작성은 우선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김진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능커네토믹스연구단 박사는 “센티미터(cm)에서 나노미터(nm)까지 ‘멀티 스케일’로 ‘살아있는 세포’를 볼 수 있는 것이 뇌의 신비를 풀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다”고 말했다.

녹색형광단백질을 이용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쥐 뇌 속의 시냅스. KIST 제공
이와 관련, 최근 들어선 광유전학(빛으로 신경세포 조절) 기술이 주목받는다. 김 박사는 형광 빛을 낼 수 있는 녹색형광단백질(GFP)을 이용, 쥐 뇌 속의 시냅스를 찾은 뒤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기술(엠그래스프·mGRASP)을 개발했다. 살아 있는 뇌의 극히 미세한 부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광유전학의 인간 적용을 위해선 △빛에 민감한 단백질 유전자를 바이러스를 통해 인체에 삽입하고 △두개골에 구멍을 내 광섬유를 꽂아야 한다. 기술적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간은 지금까지 길이 1mm의 선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 지도를 완성해냈을 뿐이다. 이 선충의 뉴런 302개와 시냅스 7000개를 지도로 만드는 데 12년 넘게 걸렸다.

그렇지만 현재의 기술적 어려움이 인간 뇌 지도를 포기하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할 듯하다. 고령화 시대에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상한 치매 등 뇌질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인간 뇌 지도 완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온라인에서 실험용 쥐 뇌의 망막영역을 함께 그려나가는 ‘아이와이어’(EyeWire) 프로젝트에서 완성된 뉴런과 시냅스의 영상. 아이와이어 블로그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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