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 법칙으로 인류난제 해결'..양자컴퓨터 시대가 온다

이승현 기자I 2014.09.17 04:55:24

구글·MS·IBM과 미·중·영 정부, 양자컴퓨터 개발경쟁.."21세기 과학혁명도 가능"
"수백만년 걸리는 문제 며칠만에 해결"..게놈분석·인공지능 개발 등에 적용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캐나다의 벤처회사 디-웨이브 시스템즈(D-Wave Systems)가 개발한 신개념 컴퓨터인 ‘디-웨이브 투’(D-Wave 2). 현재까지 세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컴퓨터가 정말로 양자컴퓨터로의 원리와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논란이 많다. 디웨이브 시스템즈 제공.
지난해 5월 미국의 ‘양자인공지능연구소’(QuAIL)가 캐나다의 벤처회사가 개발한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인 ‘디-웨이브 투’(D-Wave Two·512 큐비트)를 1500만 달러에 구입했다. 구글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이 공동설립한 연구기관인 QuAIL이 무명의 벤처회사가 만든 컴퓨터를 거액을 들여 샀다는 소식은 큰 화제가 됐다.

디웨이브 투는 논란이 다분하지만 현재로선 세계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로 알려져 있다. 이번 소식은 학자들간 주제였던 양자컴퓨터가 일반 대중에게도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

이어 올 상반기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이 양자컴퓨터에 대한 연구개발(R&D) 착수를 공식화했고 이달 초에는 구글이 미 캘리포니아대와 손잡고 양자컴퓨터 직접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나섰다.

세계적 기업들과 선진국 정부들이 차세대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 개발경쟁에 돌입했지만 아직은 하드웨어 구현방식도 결정되지 않은 등 걸음마 단계이다. 언제쯤 상용화 될 지 예측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컴퓨터는 현재 디지털컴퓨터에 비해 정보처리 속도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꿈의 컴퓨터’로, 실용화되면 21세기 과학혁명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관심이 고조될 전망이다.

◇현대물리학 이론이 만든 새로운 컴퓨터

양자컴퓨터 개념은 현대 물리학인 양자(量子·모든 물리적 독립체의 최소단위)역학에서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운동과 힘을 기술하는 물리학 분야다. 양자역학에선 거시세계에서의 물리학 법칙과 완전히 상충되는 현상들이 많이 발견된다.

양자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갖는 ‘중첩’(superposition)의 성질을 갖는다. 빛이 입자(particle)와 파동(wave)의 성질을 모두 띠는 게 대표적이다. 또 양자 세계에선 물리적 거리 등에 상관없이 어느 한쪽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쪽 상태도 그 결과에 따라서 결정되는 ‘얽힘’(entanglement) 성질도 갖는다.

기존 컴퓨터는 0과 1의 2진법으로 정보를 저장·처리하며 기본 정보단위는 ‘비트’(bit·binary digit)이다. 만약 4개 비트가 있다면 2의 4승인 16개의 정보가 나올 수 있지만 한번에 1개 정보의 처리만 가능하다. 이게 현재 컴퓨터의 연산원리이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의 중첩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0과 1을 동시에 모두 표시할 수 있다. 여기에 한쪽 상태가 변하면 다른 상태도 영향받는 양자의 얽힘 성질에 따라 4개의 기본정보가 있으면 2의 4승인 16개의 정보를 동시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정보단위를 ‘큐비트’(qubit·quantum bit)라고 한다.

즉 n개의 기본 정보단위를 기준으로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속도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2의 n승(지수함수적)만큼 빠르다. NASA는 “양자컴퓨터는 이론적으로 기존 디지털컴퓨터가 해결에 수백만 년이 걸리는 문제들을 불과 며칠만에 풀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디지털컴퓨터의 기본 정보단위인 ‘비트’(bit)와 양자컴퓨터의 ‘큐비트’(qubit) 비교. 임현식 동국대 교수 제공(물리학과 첨단기술).
◇인간 게놈분석부터 주식시장 예측까지..빅데이터 시대 ‘해결사’

양자컴퓨터는 이처럼 천문학적 분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막대한 연산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사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 게놈(유전체) 분석과 기상데이터 분석, 우주 관측 데이터 분석, 주식시장 예측, 시뮬레이션(모의실험) 등의 분야에 사용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 구글은 양자컴퓨터를 주로 웹 검색과 음성인식 기술 등에, NASA는 은하충돌 시뮬레이션 등에 활용할 것으로 전해진다.

양자컴퓨터는 특히 주어진 여러 가능성(조합) 가운데 최적의 경로 혹은 상태(조합)를 찾는 최적화 문제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의약품 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변경과 인공지능 개발 등을 위해선 조합 최적화 문제의 해결이 필수적이다. 슈퍼컴퓨터로도 그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류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데이터 양이 엄청나게 많고 각각의 데이터 간의 관계파악이 어려운 빅데이터 분석에서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상황은 아직 초기 연구단계

한국에서도 최근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직은 초기 연구단계에 들어선 상황이다. 현재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가 ‘실리콘-인’ 기반의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실험적으로 2큐비트까지 구현한 바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와 기술교류를 통해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TRI는 아직은 구상단계로서 광(光)기술 기반의 기술적 접근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자컴퓨터 구현에 필수적인 양자상태의 안정성(정보유지 시간)과 확장성(정보처리 양)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내용의 논문(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팀)이 나오는 등 유의미한 이론결과도 도출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양자정보통신(양자컴퓨터·양자암호통신)을 중장기 연구과제 분야로 선정했다. 그러나 아직 이 분야에 대한 예산지원이나 정책지원 등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 관심을 보이는 곳은 없는 상태다.

권용환 ETRI 광무선융합부품연구부장은 “지금으로선 양자컴퓨터 상용화까지 오래 걸려 보이지만 기반기술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며 “양산체제가 되려면 국내 기업들도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미래보고서 2025’는 미래 유망직종 54군 중 하나로 양자컴퓨터 전문가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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