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흑자 급감..외인 주식자금 대규모 순유출
환율하락 우려→기업선물환 매도→단기외채 급증
외화대출 재원 및 국내채권 매수에 이용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돈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저금리 자금을 뿜어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샘물은 해외로부터 수입됐고,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상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은 해외에서 싼 이자의 자금을 무더기로 들여와 국내 대출시장과 자본시장을 통해 풀었다. 그렇게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부동산시장으로도 흘러들어가 이른바 `부동산 광풍`을 만드는데도 일조했다.
◇ 친숙했던 유동성은 사라지고... 2002년 11월말, 세밑을 한달가량 앞두고 한국은행에서 의미심장한 보고서가 발간됐다. 장동구 당시 금융경제연구원 국제경제팀장(현 거시경제연구실장)이 펴낸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2003년부터 시작해 짧게는 3~5년, 길면 10년 내내 적자를 지속할 것을 전망하고 있었다.
실제로 2003년 1분기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3~2004년 중국시장의 등장으로 수출이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우려도 뇌리에서 잊혀졌다.
올해 경상수지 적자 우려는 연중 내내 끊이지 않았다. 1분기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했고 연간기준으로도 거의 균형 상태까지 내려왔다. 수출은 여전히 잘됐지만 수입도 늘었고, 서비스수지의 대규모 적자로 빠져나가는 달러가 급증했다.
때를 같이해 외국인 주식자금도 빠져 나갔다. 2000년 130억달러, 2001년 102억달러 순유입됐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2002년 4억달러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후 2003~2004년 240억달러 순유입되더니 지난해에는 32억달러로 줄었고, 올해는 3분기까지 68억달러 순유출로 돌아섰다. 2~3분기만 따지면 무려 120억달러 이상이 나갔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자금은 국내 외환시장에 외화의 최대 공급 채널이었다. 그 채널이 둘 다 막혔지만 2002년에도, 2006년에도 환율이 급락(원화 강세)했다. 이른바 `글로벌 달러 약세`라는 거대한 바람은 한국의 외환시장도 건너뛰지 않았다.
2002년초 1320원이던 환율은 3월이후 외국인 주식자금 순유출이 되며 1332원까지 올랐지만,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에 대한 우려로 달러값이 국제시장에서 급락하며 연말에는 1186원까지 떨어졌다. 전년말에 비해 10.7%나 절하된 것.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이후 평행선을 긋던 환율은 2004년 4분기 정부 외평기금이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무리한 환율방어에 나섰다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재차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5년 분기당 평균 1008~1040원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올들어 9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 새로운 얼굴의 `유동성`..단기 외채의 폭증은행들은 올들어 무려 400억달러 이상의 단기자금을 해외에서 차입하거나 기존 단기대출을 회수했다.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였다. 2002년에도 그랬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단기자금을 오히려 해외로 운용하던 은행들은 2002년 100억달러 이상을 단기차입하거나 회수했다.
그러나 올해 400억달러에 비하면 그 규모나 파괴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2002년에는 은행 단기차입이 없었어도 외환은 공급우위였다. 다만 국제수지 흑자 규모가 47억달러에서 116억달러로 늘어났다.
올해는 기타투자수지를 제외하면 국제수지는 대규모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 단기자금이 유입을 뺄 경우 국제수지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를 합해 9월까지 265억달러의 대규모 적자. 그러나 실제 국제수지는 150억달러 가량의 대규모 흑자다.
2002년과 2006년 모두 예금은행의 해외 단기차입에 힘입은 대규모 기타투자수지 흑자 덕분에 경상수지 흑자 감소와 주식자금 유출로 인한 유동성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 은행들은 왜 그 많은 외채를 차입했나올들어 은행의 단기 외화 유동성 사정은 말라가고 있었다. 경상수지 흑자로 들어오던 달러는 끊기고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을 팔고 속속 달러를 챙겨 떠났기 때문.
반명 달러 약세가 올해 다시 기승을 부리자, 수출 기업들은 수주가 이루어지는 즉시 미래에 수출대금으로 받을 달러를 선물환시장에서 팔았고, 수입기업은 달러를 더 싸게 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업들이 판 선물환을 매입해야 하는 은행들은 환 포지션 중립을 위해 현물시장에서 보유 달러를 팔아야 했다.
이미 외화 자금 사정이 전만 못했던 은행들은 기업이 판 선물환을 받아주고 난 뒤 현물로 되팔아야 할 달러가 바닥이 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결국 외국의 다른 은행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올해 은행 단기차입 급증을 모두 기업 선물환 매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기업들이 선물환을 판 때와 은행들이 단기자금을 조달한 시점은 그다지 일치하지 않았다. 한은이 콜금리를 올렸던 2월과 6월에는 단기외채 차입을 거의 하지 않았고, 반면 4~5월과 9월에는 그보다 매입한 선물환보다 훨씬 더 많은 단기외채를 들여왔다. 선물환매입 외에 은행들이 단기외채를 조달한 다른 배경이 또 있었다는 것.
그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급증한 외화대출 재원마련과 무위험 차익거래를 통한 국내 채권 매수다. 오인석 한국은행 외환시장팀 차장은 "과거에는 은행들 단기 유동성 사정이 풍부해서 외화 콜론으로도 자금을 많이 운용했다"며 "그러나 올들어 단기 유동성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화대출에 대한 재원마련과 함께 환차익을 고려한 내외 조달금리 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도 외화차입이 늘어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위험을 헤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둘다 저금리로 조달해 고금리에 투자한다는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캐리 트레이드의 속성을 띠고 있다. 부동산 투자에도 활용됐다는 엔화대출의 경우 워낙 금리가 낮은데다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어 원화대출을 받은 기업들이 바꿔 탈 수 없느냐는 문의가 은행마다 쇄도했다. 한은 관계자는 "환위험을 헤지하지 않을 경우 금리를 1%포인트 가량 절약할 수 있고, 헤지를 해도 0.40~0.50%포인트를 낮출 수 있어 기업들 선호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똑같이 해외에서 유입되는 유동성이었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랐다. 지난해 이전까지는 외국인 자금이 주로 주식시장으로 직행했다면, 단기차입과 대출회수로 들어온 새로운 유동성은 주식시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그곳은 금리가 결정되는 은행 대출시장과 채권시장이었다.
특히 재정거래를 통한 채권매입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 채권시장의 주도세력은 완전히 바뀌었고, `웬만해서는 오르지 않는 금리`를 만들어 놓았다.(4편으로 이어집니다)
☞(저금리의 비밀)시리즈, 게재된 기사 바로 가기
①왕따! 한국은행
②`거품 경고`..2002년 재판인가
③유동성의 `바통터치`..藥 혹은 毒(?)
④외은지점, 한국 채권시장 `접수`
⑤4월,거품을 잉태하다
⑥`패거리금융` 진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