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에 올라온 1분 29초 영상
A씨가 붙잡히기 이틀 전인 7월 23일. 유튜브 채널 ‘김경준’에는 ‘신림동, 소름 돋는 사이코패스 도둑 CCTV 실제상황’이라는 영상이 게재됐다.
해당 영상은 피에로 가면을 쓴 한 남성이 오피스텔 복도로 추정되는 곳에서 서성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남성은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집어 든 뒤 인기척이 느껴지는 지 확인하려는 듯 문에 귀를 대보고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열리지 않자 남성은 문 앞에 있던 택배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집 안에 있던 주민이 나와 상황을 살피는 모습도 담겼다.
한 원룸의 CCTV 영상으로 보이는 해당 영상은 금세 온라인 커뮤니티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큰 관심과 우려를 일으켰다.
이는 같은 해 5월 28일 발생한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과 맞물려 더 큰 공포심을 자아냈다. 해당 사건은 30대 남성이 신림동 한 빌라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던 20세 여성을 뒤쫓아 주거침입을 하려 했던 사건으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에선 간발의 차이로 남성이 여성을 따라 들어가는 데 실패한 모습이 공개돼 “소름 돋는다”는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았다.
또 그해 7월 11일에는 이른 새벽 신림동 한 원룸 화장실 창문으로 침입한 남성이 샤워 중이던 여성의 목을 조르고 반항하자 달아난 사건 등 여성 1인 가구를 상대로 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불안감이 높아진 시기였다.
이 가운데 공개된 ‘피에로 영상’에 네티즌들은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나”, “가면이 너무 섬뜩하다”라며 경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 실제상황? 연출? 진실은
그러나 일각에서는 “CCTV 각도가 좀 이상하다”, “영상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집에 사람이 있는데 택배 물품이 계속 문 앞에 있는 게 이상하다” 등 영상이 연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
온라인을 삽시간에 떠들썩하게 만든 이 영상에 대해 경찰 수사가 진행된 지 이틀 만인 7월 25일 00시 15분 영상 속 건물에 사는 A씨를 붙잡았다.
영상을 본 해당 건물 관리자가 자신이 관리하는 곳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 A씨를 특정할 수 있었고 이후 영상의 진실이 드러났다.
A씨는 1인 스타트업 택배 대리수령 업체 대표로 밝혀졌다. 자신이 만든 앱을 홍보하기 위해 이같이 연출한 영상을 올린 것. 즉, 대중적인 논란을 노린 악의적인 바이럴 마케팅이었던 것이다.
논란에 대해 A씨는 직접 온라인에 글을 올리고 영상 속 상황에 대해 “제 방문 앞에 있는 박스를 훔쳐 가는 것처럼 촬영하고 뒷부분에는 방 안에 사람이 있는 척 방문을 연 장면을 촬영해 편집했다”며 “공포를 극대화하는 극적 정치였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A씨는 “멍청하고 짧은 생각이었다. 부끄럽게도 어떻게 하면 사이코패스처럼 보일까 고민했다”면서 “영상만 봐도 섬뜩한 공포로 느껴졌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전적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영상을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새로운 포털사이트를 만들어 보겠다고 구글, 네이버에 덤볐다가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은 가난한 스타트업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짜리 미니원룸에 살고 있다”고 한 뒤 “돈이 없으니 효과적인 홍보가 필요해 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혼자 사는 여성들이 택배 받는 게 두려워 ‘곽두팔’이라는 센 남성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다”며 “이런 이유로 CCTV 구도로 택배를 훔쳐가는 영상을 촬영해 ‘이런 무서운 택배 도둑은 없어야 한다!’는 식의 영상 컨텐츠를 제작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많이 놀라셨을 네티즌분들과 고생하신 강력계 형사님들, 관악경찰서 관계자 분들, 놀라셨을 신림동 주민들께도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죄의 말을 전했다.
영상이 논란이 된 후 이를 알게 된 A씨 거주 원룸의 집주인은 A씨에 바로 집을 비워달라고 연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남긴 글에서 A씨는 “집주인이 짐을 빼고 나가라고 했지만 겨우 하루 연장했다. 당장 갈 곳없이 반강제로 쫓겨 나가게 됐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가슴이 아프다”면서 “모쪼록 이번 논란을 통해 여성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더욱 공감하게 됐다. 앞으로 여성 젠더 감수성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공부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