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계급·불평등의 공간, 화장실의 역사

장병호 기자I 2024.02.14 00:05:00

화장실 전쟁
알렉산더 K. 데이비스|388쪽|위즈덤하우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이른바 ‘성(性)중립 화장실’이 있다. 성별 구분을 없애고 넓은 공간 안에 여러 편의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다.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젠더와 몸을 가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 불법 촬영 등 성범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한다.

화장실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화장실에 대한 젠더 갈등 담론이 이어져 왔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젠더, 섹슈얼리티,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저자는 이러한 담론을 주목해 200여 년에 달하는 미국 공중화장실의 역사를 파헤친다. 이를 통해 화장실이 어떻게 젠더 질서를 형성해 왔는지를 분석했다.

공중화장실은 19세기 후반 배관 기술의 발전으로 실내 수세식 화장실이 생겨나면서 등장했다. 처음 생긴 것은 ‘남성’ 화장실이었다. 20세기 초 성차(性差) 연구와 노동 운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여성 노동자를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성별분리 화장실’ 의무화를 담은 법적 규제로 이어졌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세기 후반,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성중립 화장실’은 평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때로는 문화적 권력과 특권 체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가난한 지역은 공간의 물리적 한계와 개조 비용의 제약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성중립 화장실’이 등장한 것처럼 젠더의 사회·문화적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장실이 변해온 것처럼, 젠더에 대한 생각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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