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검거된 의사가 5년간 800명에 육박했다는 충격적 통계가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다. 이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의사(한의사·치과의사 포함) 793명이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됐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의사가 이렇게 많다니 개탄을 넘어 분노가 치밀 지경이다. 여기엔 병원 밖 성범죄도 포함됐지만 대부분 병원 안 성범죄다.
그 가운데 강간과 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가 689명(86.9%)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불법촬영 80명(10.1%),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 19명(2.4%),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5명(0.6%) 순이었다. 강간과 강제추행에는 동료 의사나 간호사를 상대로 한 경우도 있지만 환자를 상대로 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약물에 취해 운전하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의 범인 운전자를 진료한 의사 염모씨가 대표적 사례다. 염씨는 다른 환자 여성 10여명을 수면마취 상태로 만든 뒤 은밀한 신체부위를 촬영하거나 성적 추행을 저지른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거된 경우는 전체 의사 성범죄 가운데 일부일 개연성이 높다. 환자가 마취된 상태에서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 된 것을 인지할 수 없을 뿐더러 의심이 들어도 사실 입증이 어려워 법적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늦었지만 의료법 관련 조항 개정으로 지난해 9월부터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로 의식이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기관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촬영은 환자나 보호자가 수술 전에 요청한 경우에 한정되고, 영상의 최소 보관의무 기간도 한 달에 불과하다. 게다가 영상 열람과 제공이 환자와 수술 참여 의료인 전원이 동의한 경우에만 가능해 활용도가 낮다.
이래서야 환자가 의사를 믿고 안심하고 몸을 맡기기 어렵다. 경찰과 검찰은 의사 성범죄를 비롯한 의료기관 내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 전문성을 높이고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단체들은 단체들대로 직업윤리 제고를 위한 자정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의료인에 의한 환자 인권 침해 요소를 제거하고 국민 신뢰를 높이는 일에 의사들 스스로가 협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