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그제 총지출 656조 9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내놓았다. 총지출 증가율을 2.8%로 지난해(5.1%)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92조원이나 되는 적자 예산으로 편성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율은 3.9%로 윤석열 정부가 약속한 재정준칙(적자율 3% 이내)을 1%포인트 가까이 초과했다.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며 강력한 긴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나라살림 설계도가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세수 부족에 있다. 국세수입이 올 상반기(1~6월)에만 지난해보다 39조 7000억원이나 줄었다. 그 결과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6월말 현재 83조원에 달한다. 연간으로는 지난해(117조원)에 이어 또다시 10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 상반기 세수 감소 내역을 보면 법인세와 소득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업은 이익이 줄고 가계는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내년 국세수입 목표액을 올해 본예산 대비 8.3%(33조 1000억원)나 줄여 잡은 것은 국세수입이 15%나 늘어났던 지난해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줄어든 것은 세수만이 아니다. 올 들어 주요 실적 지표들이 줄줄이 급감하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7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했으며 이달 1~20일 사이에도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무역수지 적자가 1~7월 누적 기준으로 248억달러를 넘었다. 올 상반기 상장기업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52.45%, 순이익은 57.9%나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가계의 실질소득과 실질 소비지출도 각각 3.9%와 0.5% 감소했다.
세수는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한해 경제활동 결과를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의 예로 봐도 세수 감소는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등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를 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긴축을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적자가 쌓이는 현 재정 상황은 한국경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축소형 경제의 함정에서 벗어날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